레딧 번역 괴담/시리즈

[레딧 괴담] 내 이름은 릴리 매드윕이야 [6]

리버틴 2019. 5. 30. 02:28

원출처




 

내 이름은 릴리 매드윕인데 우리 엄마아빤 악마야.

 

둘 다 말야. 사탄이 반으로 갈라져서 두 사람이 된 것 같아. 그리고 그 둘이 지구에 와서 우리 아기 만들자.” 하고는 나를 낳아놓고 이제 괴롭혀주자!” 한 것 같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악!

 

뭐 로저를 먼저 낳았긴 하지. 근데 로저를 괴롭힌 적은 없어. 엄마아빠는 로저한테 드럼세트를 사줘서 우릴 괴롭히도록 했어. 어쩌면 로저도 사탄이었는지도 몰라. 사탄이 세 명으로 갈라진 거지. 로저가 태어나는 걸 난 본 적이 없으니 분명 가능성 있는 얘기야.

 

릴리, 파스칼은 어디 갔어?”

 

쟨 사탄이 아냐. 자말이지. 자말은 평소처럼 나랑 같이 버스를 타고 있어. 자말이랑 다른 남자애들 두 명은 우리 학교에 와서 같이 놀다가 우리 학교 애들이 수업에 들어갈 때면 자기네들 가톨릭 학교로 돌아가. 자말은 동네 이웃인데 친구라고 할 수 있는 가장 가까운 존재야. 자말은 내가 아니었으면 죽을 뻔했을지도 몰라. 근데 또 어떻게 보면 다들 내 옆에 오기만 하면 죽으니까 자말이 내 옆에 없었다면 그럴 만한 상황이 생기지 않았을지도 모르지. 그 일은 그냥 내 장난감 부대원 탓으로 돌릴래. 세상에, 내 장난감 아직도 나무에 걸려 있겠네. 엄청 춥겠다.

 

파스칼이 아니라 파스찰이야. 어디 갔는지 몰라. 악마같은 우리 아빠가 데려갔어.” 자말한테 말해.

 

, 네가 무슨 잘못이라도 한 거야?”

 

좋은 질문이네. 잘못을 했냐고? 나 때문에 우리 오빠 로저가 세 달 전에 죽었지. 상담 선생님이 음식 알러지에 죽도록 그냥 놔뒀지. 자말 너도 나 덕분에 숲속에서 찾은 죽은 동물들에 대해 아직까지도 악몽을 꾸고 있지. 리사 웰치가 놀이터 바닥에다 이빨을 깨게 만들었지. 그치만 너는 리사 웰치를 모르지. 리사 웰치를 모른다니 정말 행운아야. 그 나쁜 여자애들도 말야. 나도 가톨릭 학교로 전학갈 수 있는지 궁금하네? 난 천사랑 신도 믿고 이제 악마도 분명 있다고 믿는데. 멍청하고 악마같은 부모들 같으니.

 

아니.”

 

쇼핑몰 애완동물 가게 전체를 죽인 사건도 있었지. 무슨 성경책에 나올 법한 전염병같은 규모였어. 규모는 양을 뜻해. 예를 들어서 각자의 몫을 나눠준다고 하면 작은 건데 어떤 규모로 받는다고 하면 크다는 뜻이야. 그러니까 그 사건은 엄청, 엄청 큰 일이었다는 거지. 죽은 강아지랑 고양이들이 널려 있고. 내 생각엔 내가 그런 것 같아. 내가 그 검은색 여자한테 너무 가까워져서 그런 걸 거야. 나랑 그 여자가 너무 가까워지면 주변의 것들이 죽나봐. 사람들도 죽고. 저번에 숲속에서 동물들이 다 죽었을 때도 우리 집 뒤에 있었던 건지 궁금하네. 그 여자를 생각하면 무서워져.

 

자말 친구 그렉이 우리 좌석으로 몸을 숙이더니 씩 웃어. 그렉은 쨍한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갖고 있어. 자연 머리색깔이 아닌 것 같아. 그렇게 오렌지빛이 나는 머리카락이 어디 있어? 자말은 걔가 진저라고 하지만, 진저브레드 쿠키를 본 적이 있는데 걔네들은 내 머리색처럼 갈색이란 말이야. 어떤 사람들은 그렉 머리보고 빨갛다고 해. 왜 오렌지색 머리를 그냥 오렌지색이라고 안 하는지 모르겠어.

 

네 천사 인형이 천국으로 날아가 버렸는지도 모르지.” 그렉이 말해.

 

넌 절대 모를 거야.” 내가 중얼거려.

 

우리 중 한 명이 천국에 못 간다면 그건 당연히 전부 죽이고 다니는 여자애겠지.” 그렉은 천국과 지옥을 정말 진지하게 믿어.

 

자말은 그렉을 밀쳐내. “너 파스칼 없이는 미래 못 보지?”

 

파스찰이라고. 그리고 볼 수 있어.”

 

그렉이 다시 고개를 들이밀어. “그럼 나한텐 무슨 일이 생기는데, 릴리?”

 

아무것도. 그렉한테는 아무 일도 안 생길 거야. 멍청한 그렉이랑 그 멍청한, 오렌지도 아닌데 오렌지색인 머리한텐 말야. 오렌지색 머리카락을 가진 사람이 다 싫다는 건 아니지만, 그런 사람이라곤 그렉밖에 모르는데 걘 정말 멍청해.

 

넌 슬프고 외롭게 죽을 거야.”

 

그렉은 그 대답을 마음에 안 들어해. 그게 사실인진 나도 몰라. 그렇게 먼 미래를 볼 순 없어. 파스찰은 알 텐데. 파스찰은 그런 것도 다 알아. 파스찰은 모든 걸 다 알거든. 그리고 파스찰은 항상 나한테로 돌아와. 적어도 지금까지는 항상 나한테 돌아왔었어.

 

어제는 하루종일 파스찰을 찾아다녔어. 파스찰 이름을 불러 봤는데 대답은 없었어. 보통은 파스찰이 상자나 서랍 안이나 내 원더우먼 담요 밑에 있어도 파스찰 말을 들을 수 있거든. 파스찰 목소리는 귀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들려. 결국 찾지 못해서 나는 파스찰을 다시 달라고 엄마한테 빌었어. 엄마랑 아빠랑 대화도 할 거라고 약속했고, 이제 비밀을 숨기지 않겠다고도 약속했어.

 

엄마는 날 안고는 내 이마에 뽀뽀를 해 주고 말했어. “릴리빈, 잘 들으렴.”

 

잘 들으라는 말 다음에는 절대로 좋은 말이 안 따라와. 부모님들이 좋은 소식을 전하고 싶을 때는 애들이 듣고 있는지 미리 알고 있거든. 나쁜 소식을 전해야 할 때는 애들이 꼭 듣고 있도록 확실하게 해.”

 

화요일에 병원에 가서 응급 MRI를 찍을 수 있도록 예약해 놨단다.”

 

“MRI가 뭐예요? 미스터 아이?”

 

의사 선생님들이 네 안쪽을 볼 수 있게 스캔하는 거란다.”

 

왜요?” 혹시 죽음의 천사를 만나서 내 안쪽이 젤리로 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 혹시 나는 이미 죽어가고 있는데 내가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몰라. 젤리는 그냥 사람들 안쪽을 말하는 걸까? 포도 젤리만 빼고 말야. 포도 젤리는 포도 안쪽을 말하는 거야.

 

엄마가 날 토닥여. 엄마는 그게 날 안정시키는 줄 알아. 그치만 난 2학년이 된 후로는 누가 토닥인다고 안정이 된 적이 없어. 그 전에도 그냥 내가 애완동물인 척을 했기 때문에 안정됐던 거야. “그냥 다 괜찮은지 보려고 그러는 거란다.”

 

근데 그거랑 파스찰이랑 무슨 상관이에요?” 내가 물어.

 

말만 잘 들으면 아무 일도 없을 거야. MRI 찍고 나서 파스찰을 돌려줄지 결정하도록 할게. 괜찮지?”

 

안 괜찮아. 이젠 버스에서 멍청한 그렉이랑 앉아 있고 학교 가면 메러디스가 내 옆에 앉고 싶어하는 걸 견뎌내야 하는데 파스찰이랑 대화할 수도 없잖아.

 

당연하게도 학교에 가자마자 그네 옆에서 날 기다리고 서 있는 메러디스가 보여. 그래서 난 그냥 야구장 근처에 앉아서 자말이 공놀이를 하는 걸 지켜봐. 오늘은 가랑이에 공을 맞을 애는 없는데, 메러디스가 날 발견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서 그래. 그렉이 뛰어가면서 다른 애들이랑 같이 책가방을 내던져. 혀를 내밀면서 나보고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들어. 쟨 천국에는 못 갈 거야.

 

파스찰은 어디 있어?”

 

아 씨, 메러디스잖아. 으악, 씨라고 하면 안 되는데. 괜찮아. 속으로 한 거니까.

 

집에 있어.” 메러디스가 앉길래 나는 벤치 옆으로 살짝 몸을 움직여. 메러디스의 녹아 버린 천사 바비인형 나다니엘에 의하면 얜 물건들을 불태운다고. 메러디스 인형은 가방에서 삐죽 나와가지곤 녹아버린 뭉텅이같은 손을 나한테 흔들면서 쳐다봐.

 

토요일에 쇼핑몰에서 생겼다는 일 들었어?”

 

나는 조용히 한숨을 쉬어.

 

메러디스가 계속해. “테러리스트 공습이 있었대. 사람들이 무더기로 죽었다더라.” 메러디스는 공놀이를 하는 애들을 쳐다보고 있는데 아마 지금 내 표정을 봤으면 내가 그 얘길 하기 싫어하는 걸 눈치챘을 거야.

 

있잖아, 메러디스?”

 

?”

 

너희 부모님은 어떤 분들이셔?” 무슨 대답이 나올진 대충 알아. 쟤네 부모님은 죽었어. 나다니엘이 그러는데 얘가 그 분들을 재로 만들어 버렸대. 메러디스를 화나게 하려는 건 아니지만, 사실 그런 건 지금 딱히 걱정되지 않아. 난 그냥 파스찰이 너무 보고 싶고 대화 주제를 바꾸고 싶을 뿐이야.

 

메러디스는 공놀이를 쳐다보던 눈을 내려 자기 발치를 쳐다봐. 내 질문 때문에 속상해진 게 보여서 마음이 좋진 않지만 메러디스 곁에서 안전함을 느끼려면 더 자세한 내용을 알아야 할 것 같아. 메러디스는 내 친구가 되고 싶어하는데, 다른 사람들은 나한테서 그런 걸 바라지 않는단 말야. 자말만 빼고.

 

불에 타서 돌아가셨어.”

 

나다니엘은 그저 침묵을 지켜. 만약 내가 메러디스를 잘못 건드린다면 얘가 날 자기 부모님처럼 불태워 죽이기 전에 나다니엘이 나한테 경고를 해 줬으면 좋겠어.

 

정말 안됐다. 미안해.” 나는 메러디스 어깨에 손을 올려. 내가 슬플 때 항상 엄마가 옆에 앉아서 이렇게 하거든. 혹시 메러디스를 토닥여 줘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지만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고 내가 그랬다가 다른 애들이 보면 이상하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화재 원인은 뭐였대?”

 

.. 나는…” 안 돼, 메러디스가 울어. 안아줘야 하는 거지? 놀이터에서 눈물을 보이는 건 약자라는 증거니까 리사 웰치랑 걔 친구들이 메러디스가 우는 걸 보게 해서는 안 돼!

 

나는 메러디스를 안아. 나다니엘이 잘했다고 하는 거 같아. 고마워, 나다니엘!

 

이 대화로 알게 된 건 하나도 없잖아. 젠장.

 

난 손으로 주변에 있는 것들을 태워.”

 

방금 한 말은 취소야. “태운다고?” 따라 말헤.

 

메러디스는 고개를 끄덕이고선 눈을 비벼.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는 얼굴 한 쪽은 아직도 빨갛고 밀랍같이 생겼는데 그건 얘 잘못이 아니지. 메러디스가 훌쩍거리는데 그건 운다는 뜻이지 코를 먹는다는 뜻이 아냐. “내 손이 막 뜨거워지는데그러면 내가 만지는 건 전부 타 버려. 나는 타지 않아…. 내가 만드는 불은, 나를 태우지는 않아. 뭘 태우려면 보통 내 손으로 직접 만져야 하는데, 한번은 불이 났는데 내가 그런 게 분명했어. 내 손도 뜨거웠고 화도 나 있었거든, 그런데 아무것도 안 만지고 있었는데도 불이 난 거야. 불이 났는데그 불이 이렇게 만든 거야.” 메러디스는 자기 얼굴을 가리키고는 녹아버린 바비를 들어 보여. “그때 자고 있었는데, 내가 그랬던 게 분명해. 난 항상 불을 일으키는 애니까.”

 

근데 네가 만드는 불은 널 태우진 않는다며.”

 

모르모르겠어. 그 불은 그랬어.”

 

나도 능력이 하나 있어.” 제발 까무러치지 마, 하고 생각해.

 

메러디스가 날 바라봐. 화상을 입은 쪽 눈이 뭔가 희뿌얘. 저 눈으로도 보일까? 우리 할머니가 죽기 전에 녹내장이라는 병에 걸렸었는데, 그거 때문에 눈이 다 희뿌얘져서 눈이 잘 안 보였었어. 할머니는 여기저기 부딪히고 다녔는데 그러다가 죽은 건 아니야. 그냥 너무 나이가 드니까 할머니 몸 안쪽이 잘 돌아가지 않아서 그래. 내 몸 안쪽은 잘 돌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네. 나도 녹내장에 걸리게 될까?

 

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미리 볼 수 있어.” 하고 속삭여. 왜 속삭이는지는 모르겠어. 난 그걸 비밀처럼 여기고 있는데 사실 이 바보같은 놀이터에 있는 애들은 전부 내 능력을 알고 있거든. 아님 최소한 내가 능력이 있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가. 대부분은 내가 미쳤다고 생각한단 걸 나도 알아.

 

어떤 일들?” 메러디스가 물어.

 

아무거나 다.” 내가 말해줘. “가끔은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하고 가끔은 실제로 눈앞에 보이기도 하고 가끔은 냄새가 나기 전부터 그걸 맡을 수 있어. 그러니까, 냄새는 어디서나 나지만, 예를 들어 사람들이 팝콘을 요리하기 전부터 난 팝콘 냄새를 맡을 수 있어. 한 번은 거의 한 시간 동안 팝콘 냄새가 나서 팝콘이 너무 먹고 싶었는데, 그래서 엄마아빠한테 팝콘을 만들어 달라고 했더니 팝콘을 먹을 수 있었어. 이 얘기는 별로네. 우리 오빠 로저가 죽기 전에도 미리 죽을 걸 알고 있었어. 오빠를 살리려고 노력도 했어. 그래도 죽어 버렸고.”

 

메러디스가 날 쳐다보는데 걔 얼굴은 마치돌고래를 처음 본 사람 얼굴 같아. 놀라움, 이라고 해야 할까. 메러디스가 날 미쳤다고 생각하는 건지, 자기처럼 진짜 능력아니 어쩌면 저주를 가진 사람을 찾았다는 얼굴인 건지 모르겠어. 아님 팝콘이 먹고 싶어진 걸지도 몰라. , 나도 뭔가 팝콘 먹고 싶어.

 

그러니까 너 저번 주에도 그 여자애가 넘어질 걸 미리 알았던 거야?”

 

난 인상을 찌푸려. “음 아니그건그건 그냥 지어낸 거야. 근데 실제로 일어나 버렸고. 그건 설명할 수가 없어.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거든.”

 

나랑 똑같네.” 메러디스가 고개를 끄덕여. “난 원래 손으로 물건들을 태우고 다녔었는데, 세 달 전에 엄마아빠랑 축제에 갔을 때 내가 손을 대지도 않았는데 무대 전체가 불에 타 버렸어. 그런 적은 한 번도 없었는데.”

 

메러디스가 갑자기 조용해져. “어떤 어린애 한 명도 죽었어. 너네 오빠처럼, 그렇게 만들고 싶진 않았지만, 그렇게 되어 버렸어.”

 

그게 정말 똑같은 건지는 모르겠는데.”

 

벨이 울리고 메러디스랑 나는 가방을 챙겨서 줄을 서러 가. 자말이랑 그렉이 자기네 멍청한 학교로 뛰어가는 것도 봐. 갑자기 뭔가가 날 세게 밀치는 게 느껴지고 난 거의 넘어질 뻔해. 주변을 둘러보는데 내 곁엔 아무도 없어. 메러디스는 줄 앞에 가서 서 있고. 이게 실제가 아니라 곧 일어날 일인 거란 걸 깨달았어. 생각할 시간도 없이 우리보다 나이가 많은 애 한 명이 지나가면서 메러디스를 밀쳐.

 

 “비켜, 괴물 얼굴아.” 걔가 메러디스한테 말해.

 

메러디스가 나처럼 휘청이더니 다시 꼿꼿이 섰고, 잠시 주먹을 꽉 쥐더니 몸을 떨어. 그리고 주먹 안쪽이 오븐처럼 뜨겁게 빛나기 시작해.

 

난 또 나쁜 말을 생각해 버려.

 

뒤에서 파도가 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다들 주차장 끝에 있는 나무가 불타는 걸 지켜봐. 불길은 마치 땅에서 솟구치는 것처럼 밑에서부터 타고 올라왔고 나무 전체가 불로 휩싸여. 다른 건 절대 타지 않고 그 나무만 타.

 

!” 다들 엄청 놀란 소리를 내. 어떤 애는 이렇게 소리질러. “와 미친!” 적기만 했지 말한 건 아니니까 내가 나쁜 말을 한 걸로 치진 않아.

 

나다니엘이 나한테 말하는 게 들려. 릴리, 빨리, 와서 메러디스를 진정시켜야 해. 릴리 어서 이리 와, 어서.

 

그래서 어른들이 놀라서 애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는 동안 난 줄에 서 있는 애들을 밀치고 가서 메러디스 어깨에 손을 올리고 이렇게 말해. “메러디스, 괜찮아. 메러디스, 내가 여기 있어.”

 

메러디스는 꽉 쥔 주먹을 다시 폈고 어깨도 풀어지는 게 느껴져.

 

나다니엘이 나한테 고맙다고 해. 고맙구나, 릴리.

 

파스찰이 여기 있었다면 좋을 텐데.

 

나무는 계속 타고 있어. 사람들이 대체 이게 무슨 일이냐고 소리지르는 동안 우린 안으로 들여보내져. 난 메러디스랑 같이 줄을 서서 사물함에 갔고 물건들을 집어넣는데 파스찰이 없어서 다시 슬퍼져. 자리에 앉는 동안 밖에 소방차가 온 소리가 들려와.

 

메러디스는 얼굴을 숨겨.

 

나는 몸을 숙여서 메러디스한테 속삭여. “그리고 말야, 네 바비인형 안에는 천사가 있어.”

 

메러디스가 고개를 돌리더니 반쪽 얼굴로 반쯤 화나고 반쯤 황당한 표정을 하고 날 쳐다봐. 메러디스가 반쪽 얼굴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별로 없는데 화상입은 쪽 얼굴을 머리카락으로 가리고 있으니까 반은 잘 볼 수가 없어.

 

?” 메러디스가 물어.

 

나다니엘은 타버린 머리와 녹아내린 얼굴과 뭉텅이가 된 손을 갖고 그저 말없이 책상에 앉아 있어. 난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해. “얘 이름은 나다니엘이야.”

 

메러디스는 자기 바비인형을 쳐다봐. “그건 남자 이름이잖아.”

 

네 천사 이름이야.”

 

어쩌면 지금으로써는 너무 많은 걸 말해주고 있는지도 몰라. 메러디스한테 너무 많은 것들을 던져주고 있어. 난 일어나지 않은 일들을 미리 볼 수 있는데다 얘 바비인형 안에는 남자 이름을 가진 천사가 들어 있다니. 물론 나로써는 그럼 그렇지,” 할 것들이지만, 난 이미 너무 많은 걸 듣고 봐 버렸으니까. 메러디스는 천사들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아.

 

증명할 수 있어.” 난 나다니엘 쪽으로 고개를 돌려서 메러디스에 대해 내가 모르는 사실을 알려달라고 말해.

 

메러디스는 자기 바비인형을 쳐다보고 있는 날 지켜봐, “뭐 하는 거야?”

 

머릿속으로 나다니엘한테 말을 걸고 있는 거야.”

 

재미 없어, 릴리.” 메러디스는 나다니엘에게 손을 뻗어.

 

이 인형은 여섯 살 때 제시카 프리차드라는 친구가 생일 선물로 준 거구나.” 내가 말해.

 

메러디스가 멈춰. 또 그 놀란 표정으로 날 쳐다봐. 이제 메러디스가 저 표정으로 날 쳐다보는 거에 익숙해질 거 같아. 메러디스의 행복한, 웃는 표정이 뭐였는지 까먹을 것 같아.

 

릴리 매드윕,” 카터-도그빌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셔서 난 손을 들어.

 

여기요!”

 

메러디스가 나다니엘을 집어들어. “어떻게 알았어?”

 

나다니엘이 말해 줬어.”

 

왜 넌 얘 말을 들을 수 있는데 난 못 듣는 거야?”

 

난 어깨를 들썩여. “나도 몰라. 내가 가진 능력 중에 하나인가 봐. 일어날 일을 미리 볼 수도 있고 천사들 말도 들을 수 있는 거지.”

 

우리 앞에 앉아 있는 루이스 브로디라는 남자애가 고개를 돌리더니 이렇게 말해. “아 진짜, 너네 입 좀 닥칠래? 너네 둘 다 미쳤어!”

 

메러디스가 걜 매섭게 노려보지만 나는 메러디스 어깨를 살짝 건드렸고 메러디스가 날 쳐다볼 때 난 재빨리 고개를 저어 보여. 제발 우릴 다 죽이진 말아줘. 몇 달 동안 한 번도 화재 훈련을 안 했단 말야.

 

우린 점심시간에 더 얘기하기로 하고 기다려. 메러디스랑 나는 테이블 하나에 둘이서만 앉아. 화상을 입은 얼굴을 한 전학생이나 리사 웰치한테 저주를 걸어서 걔네 아빠가 돈과 노력을 들인 완벽한 미소를 망가뜨린 마녀 릴리 매드윕이랑은 아무도 안 앉고 싶어하거든. 멍청한 리사 웰치. 지난 한 주 동안 걜 한 번도 못 봐서 너무 좋아. 걜 쫓아다니던 못된 여자애들은 리사가 없으니까 아무것도 못 하고 자기들끼리 지내.

 

사실 사람들이 쇼핑몰에서 죽을 때 나도 거기 있었어.” 난 크래커를 먹으면서 메러디스에게 말해. 크래커들은 조그마한 물고기처럼 생겼는데, 비싼 브랜드는 아냐. 우리 아빤 유명한 브랜드는 절대 안 사거든. 누가 말린 양파에 소금을 뿌린 것 같은 맛이 나.

 

메러디스가 아무 말도 안 하고 날 쳐다봐. 메러디스는 입에 땅콩버터 샌드위치를 물고 있는데 입천장에 빵이랑 땅콩버터가 달라붙어서 말을 못 해. 혀로 그걸 벗겨내려고 하는 게 꽤 웃겨.

 

테러리스트들이 그런 게 아냐. 검은 옷을 입은 여자가 그런 거야. 그 여자 발치에는 검은 연기가 둘러싸여 있었고 머리를 물에 담근 것처럼 주변이 전부 조용해졌어. 아무것도 안 들렸어천사 말소리 말고는 말야. 그 여자 곁에도 우리처럼 천사가 따라다니고 있었어평소의 우리처럼 말야.” , 파스찰.

 

므아?” 메러디스가 말해. 그건 땅콩버터가 묻은 입에서 나오는 언어로 그래?” 라는 뜻이야.

 

그 여자 주변에 보이진 않았는데, 천사가 나한테 말을 걸었어. 나한테 도망가라고 하고, 우리가 가까이 있으면 나쁜 일이 생겨서 안 된다고 했어. 그리고 애완동물 가게 안이 전멸해 버렸어. 모든 게 죽어 버렸어.”

 

메러디스가 씹는 걸 멈추고 튀어나올 듯한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걸 보니 나한테 완전히 집중하고 있는 게 분명해. 사실 메러디스가 씹는 걸 멈춰서 안심이야. 너무 쩝쩝대면서 먹어서 아빠가 싸 준 당근 조각들을 귀에 쑤셔넣고 싶었거든. 근데 아마 귀에 맞지는 않을 거야. 아빠는 삼각기둥 모양으로 당근을 써는데 사실 귀에 한 번 넣어 보니까 뾰족한 부분이 아팠거든. 그 얘기를 하자면 길어.

 

그건 두마였어, 하고 나다니엘이 말해.

 

맞아, 그 이름이었다.” 이렇게 말하곤 메러디스가 나다니엘 말을 못 듣는다는 걸 깨달았어. “두마. 그 천사 이름은 두마라고 했어.”

 

두마는 침묵이란다. 하고 나다니엘이 말해. 두마는 악한 것들에 대한 응징이지.

 

그게 무슨 뜻인지 난 몰라.” 내가 나다니엘에게 말해.

 

메러디스는 그저 앉아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하고 있어. 대화의 반을 들을 수 없다면 정말 혼란스러울 거야. 나다니엘이 말하는 걸 내가 다시 말해줘야 할 것 같지만 만약 그러면 나한테는 그저 메아리처럼 들릴 거고 다른 사람들한텐 내가 혼잣말을 하는 것처럼 보일 거야. 점심시간 감독인 그레이슨 선생님이 벌써 나한테 이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단 말야.

 

두마는 나쁜 사람들의 영혼을 모은단다.

 

그래, 메러디스가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모르게 둘 수는 없지. 그리고, 혹시 내가 자기 바비 인형이랑 비밀 대화를 하면 화가 나서 학교를 불태워 버릴지도 모르잖아. “검은 연기를 몰고 다니는 여자한테 있던 천사는 두마라고 하는데 나쁜 사람들을 죽여서 벌을 준대.”

 

그 정도면 충분하지, 하고 나다니엘이 말해. 나다니엘은 파스찰이랑 여러모로 참 달라. 나다니엘은 발가벗은 바비인형이라는 점부터 말야.

 

그치만 그럼 애완동물 가게에 있던 동물들이 다 나빴단 말야?” 내가 물어.

 

메러디스는 어깨를 들썩이고는 샌드위치를 마저 씹어. “주인한테 오줌을 싼 애들일지도 모르지.”

 

애완동물이 누구한테 오줌을 싼다고 나쁜 사람이 되는 건 아닌 거 같아. 사람이 그런 짓을 하면 또 다르겠지만.”

 

나다니엘이 끼어들어. 너희 둘이 가까운 거리에 접어든다면

 

뭐라구?”

 

--그러면 어떠한 힘이 강화되어서--

 

“—그만 좀 해! 세상에, 왜 너네 천사는 자기가 영화에 나오는 과학자라도 된 거처럼 말을 하는 거야?”

 

메러디스가 나다니엘을 토닥거려. “너네 천사보다 똑똑하니까 그렇지.”

 

그건 아닐걸. 파스찰은 모든 걸 알고 있거든. 네 천사는 몇몇 사실을 모르고 있어.”

 

어떤 거?”

 

내가 아는 단어를 사용해야 한다는 거 같은 것들 말야. 이 얘기는 길게 안 할래.” 난 대화를 끝내려고 입에 당근 조각 여섯 개를 우겨넣어.

 

쉬는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우린 밖으로 나가. 대부분의 애들은 메러디스가 새카맣게 태워 버린 나무 쪽으로 달려가. 선생님 두 명이 주변을 지키고 서 있고 나무 옆은 전부 테이프로 막혀 있어. 물이랑 거품 같은 것도 있는데, 나뭇가지랑 기둥에 뿌린 소화기 때문일 거야.

 

이건 다 너와 메러디스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생긴 일이다, 하고 나다니엘이 말해.

 

메러디스는 나무 주변을 둘러싼 애들을 쳐다봐. 어떤 애가 테이프를 넘어가서 아직도 뜨겁다고 소리지르고 선생님은 걜 끌어내 버려.

 

무슨 소리야? 난 나다니엘에게 물어.

 

쇼핑몰에서 일어났다는 일처럼 말이다. 너희 둘 다 능력이 있어. 둘 중 하나가 다른 한 명한테 너무 가까이 다가오면, 서로의 능력을 더 강하게 만들어 버린단다. 통제할 수 없을 정도로 말이야.

 

그럼 메러디스가 뭔가를 만지지 않고 태울 수도 있다는 말이야?” 입 밖으로 말해. “그리고 난 일어날 일을 미리 볼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그렇게 일어나게 만드는 거고?”

 

뭐라고?” 메러디스가 물어.

 

바로 그거란다. 그리고 두마는 침묵과 죽음을 불러오는 천사란다.

 

왜 파스찰이 이런 얘길 안 해준 거지?”

 

나다니엘은 아무 말도 안 해.

 

메러디스는 내가 자기만 빼 놓고 자기 바비인형이랑 얘기를 하고 있다는 걸 깨닫고는 인형을 끌어안아서 자기 쪽으로 당겨. “무슨 얘기?”

 

우리가 친구가 되고 싶다면 조심해야 돼.” 내가 말해. “난 네가 손대지도 않은 걸 불태우게 만들 수 있고, 넌 내가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에 영향을 끼치게 만들 수 있어. 나다니엘이 말하기로는 그래.” 난 메러디스의 인형을 가리켜.

 

두머라는 죽음의 천사 언니는 뭔데?”

 

나다니엘이 메러디스 말을 고쳐 줘. 두마.

 

모르겠어. 나쁜 사람을 찾으러 쇼핑몰에 온 것 같아. 내 생각엔 그 언니도 뭐가 뭔지 잘 몰랐던 거 같고, 날 보고 내가 자기랑 같은 걸 볼 수 있다는 걸 알았는데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이해를 못 한 거 같아. 네가 주변에 있는 걸 태웠을 때나 내가 리사 이빨을 부러지게 만들었을 때처럼 말야. 우리도 잘 이해를 못 했잖아.”

 

하루동안 견디기에는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있어. 엄마아빠가 파스찰을 어디다 숨겼는지도 모르겠고 짜증나고 화요일엔 병원에 가서 안쪽을 검사받아야 돼. 근데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조금이라도 설명을 들었으니까, 혹시 이젠 엄마한테 설명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몰라.

 

가서 그네 타고 놀자,” 내가 제안을 해. “어차피 1분도 안 돼서 저 커다란 나뭇가지가 부러져서 애들 두 명 위로 떨어져 버릴 거야.”

 

세상에!” 메러디스가 타 버린 나무를 돌아봐. “걔들 죽는 거야?”

 

난 그네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해. “아니, 근데 한 명은 울면서 양호실로 갈 거야.”

 

우린 그네에 앉아서 나무 주변을 둘러싼 애들이 점점 흩어지는 걸 지켜봐. 그래도 일부는 아직 남아 있어서,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렸을 때 재빨리 도망가지 못하는 애들이 생겨. 내가 봤던 두 명 위로 나뭇가지가 떨어졌고 한 명은 친구들이랑 같이 웃어넘기지만 다른 한 명은 어깨 위로 더 무거운 쪽을 맞아서 놀이터를 지켜보던 선생님 한 분을 울면서 따라가.

 

네가 저 일이 일어나게 만든 걸까?” 메러디스가 나한테 물어.

 

이번엔 아냐.”

 

집에 오니까 기분이 좀 나아져. 엄마랑 아빠는 아직 천사들이나 내가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본다는 얘길 믿진 않지만, 내가 엄마아빠가 죽을 거라고 말한다고 진짜 엄마아빠가 죽지는 않을 거라는 걸 이젠 알아. 최소한 메러디스가 없을 땐 말야. 아빠가 현관 앞에 앉아 있다가 내가 오는 걸 보고 손을 흔들어.

 

선물이 있단다.” 아빠가 하모니카를 건네줘.

 

전 하모니카 불 줄 몰라요.” 내가 말해.

 

아빠가 웃어. 로저가 죽은 뒤로 아빠는 이렇게 웃은 적이 없었는데. “아빠가 가르쳐 줄게.”

 

전 사실 로저 오빠처럼 드럼이 배우고 싶어요.”

 

아빠가 고개를 돌리고 눈이 빨개지는 게 보여. 아빠 눈이 아프다는 게 아니라 아빠가 울고 있는데 나한테서 감추려고 한다는 뜻이야. 내가 아빠를 안아주니까 아빠도 날 안아줘.

 

아빠?”

 

?”

 

제가 그런 거 아니예요.”

 

나도 알아요, 아가.”

되게 좋은 하모니카야. 반짝이고 은색이고 BLUESBAND라는 글씨가 새겨져 있어. 숨을 들이킬 때랑 내쉴 때랑 다른 소리가 나. 아빠 작업실에 있던 하모니카 같아. 내가 가져도 되는 건지 궁금해.

 

그리고요, 오늘 학교에서 나무에 불이 났는데요, 그것도 제가 그런 거 아니예요.”

 

, 그러니? 이번엔 교감 선생님께 전화가 오진 않겠구나.”

 

오늘은 아녜요.”

 

어쩌면 우리 아빤 악마가 아닐지도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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