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딧 번역 괴담/시리즈

[레딧 괴담] 내 이름은 릴리 매드윕이야 [7]

리버틴 2019. 6. 25. 03:09

원출처






내 이름은 릴리 매드윕인데 내 뇌에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병원 접수 데스크에 앉아 있는 파마머리 할머니가 날 보고 미소를 지어. “릴리, 예쁜 이름이구나. L이 한 번 들어가니, 두 번 들어가니?”

 

무슨 질문이 저래? L이 한 번밖에 없다면 ILY(일리)가 돼 버리잖아. 그럼 맨날 아픈 애인 것처럼 들릴 거라고. 5학년에서 가장 아픈 아이, 일리 매드윕이 온다! 일리 매드윕만 보면 토할 것 같아!

 

나는 할머니한테 이름을 다시 말해 줘. 어쩌면 나이 때문에 귀가 잘 안 들리는 걸지도 몰라. “-리 라구요.”

 

할머니가 고개를 끄덕여. 할머니는 커다란 안경을 쓰고 있어. 안경이 왜 저렇게 큰 걸까? 할머니 눈의 두 배는 되는 것 같아. 심지어 안경을 눈에 정확히 맞추고 있는 것도 아니고, 코 중간까지 내려와서 걸쳐져 있어. 그래서 체인을 달아놨나 봐. 맨날 코로 흘러내리니까. 보이긴 하나? 눈이 너무 나빠서 안경으로 보고 있지 않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는 걸지도 몰라. 그럼 안경이 무슨 소용이지? 난 안경을 쓸 일이 없었으면 좋겠어. 난 아마 맨날 잃어버리고 다닐걸.

 

그래 아가, 나도 들었단다. 이름을 쓸 때 L을 한 번 쓰니, 두 번 쓰니?” 할머니가 물어.

 

왜 자꾸 이걸 물어보는 거지? “당연히 두 개죠.”

 

할머니가 L 세 개를 적는 게 보여.

 

다행히도 엄마가 사무실이랑 통화하던 걸 멈추고 끼어들어. “우리 애 이름은 릴리안 매드윕이에요. 오늘 MRI를 찍기로 예약이 되어 있고요.”

 

나는 대기실에 앉아 있는 다른 사람들을 보러 가. 금발 여자 분이랑 아들 한 명이 밖으로 나가는 자동문 옆에 앉아 있어. 그 남자애는 오른쪽 눈에 밴드를 붙이고 있어. 파스찰이라면 왜인지 말해줄 수 있을 텐데, 파스찰은 지금 여기 없어. 그래도 쟤한테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보여. 좀 있음 의사 선생님이 저 밴드를 떼고 쟤 얼굴에 빛을 비추고 누우라고 시킨 다음에 엄마가 쟬 잡고 있는 동안 눈에 약을 몇 방울 떨어뜨리면 쟤는 소리를 지를 거야. 그리고 다시 밴드를 붙일 거야.

 

그 둘 반대편에는 족제비처럼 생긴 아저씨가 클립보드 위로 서류 몇 장을 작성하고 있어. 족제비를 가까이서 본 적은 없지만, “족제비라는 말은 부리부리한 눈이랑 길다란 얼굴을 가진 사람들을 묘사할 때도 쓴다는 걸 알아. 이 아저씬 둘 다 가졌으니까 족제비 얼굴이 맞아. , 저 아저씨도 날 쳐다본다. 그냥이 식물을 보고 있던 거야. 잠깐, 이거 진짜 식물이 아닌 것 같아. 실내에 놓는 화분들은 사람들한테 산소를 주려고 놓는 건 줄 알았는데 얘네는 그냥 장식인가 봐.

 

릴리!” 엄마가 불러. “이리 와.”

 

접수원 할머니가 내 긴 이름이랑 생일이 적힌 팔찌를 차라고 줘. 암호같은 것도 적혀 있는데 이건 의사 선생님들이나 간호사 선생님들만 아는 건가 봐. 엄마랑 나는 앉아서 기다려. 몇 시간처럼 느껴져. 더 이상 다른 사람들한테 신경을 쏟지는 않으려고 노력해. 여긴 병원이라 다른 사람들을 쳐다보면 그 사람들 몸에 일어날 불편한 일들만 알게 될 뿐이야. 그것까지 알고 싶지는 않다고. 절대. 으웩.

 

엄마는 가사에 대한 잡지를 꺼내들어. 엄마는 사실 가사에 딱히 관심은 없는데, 관심 있는 척 하는 건 좋아해. 아마 다른 사람들 집 사진들을 좀 보고는 왜 아빠는 항상 집에 있으면서 집을 이렇게 만들어두지 않는지 비판할 거야. 그치만 아빠는 내가 묻은 애완동물들을 전부 파내고 엄마 정원의 잡초를 뽑고 장송가도 쓰니까, 맨날 집에서 놀고 있는 건 아니야. 우리가 병원에 있는 동안에는 집에서 혼자 가만히 앉아있는지 궁금하네.

 

나는 과학 잡지를 넘겨 봐. 어떤 사진작가가 원숭이들한테 진짜 가까이 가서 걔들이 원숭이짓을 하고 있는 걸 찍어 놨어. 정글에 쭈그리고 앉아서 동물들 사진을 찍는 직업도 있나 봐. 나도 그런 직업 갖고 싶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카메라를 사서 동물들 사진을 찍어도 되겠다. 아님 범죄 현장을 찍는 사진가가 되어도 될 것 같아. 이 잡지에 나오는 원숭이들은 사진작가가 자기들이랑 놀아줘서 되게 행복해 보여.

 

원숭이 기사에서 눈을 돌려 흘깃 올려다보자 족제비처럼 생긴 아저씨가 대기실 구석에서 날 쳐다보고 있는 게 보여. 아저씨는 다시 서류를 쳐다보곤 뭘 날려 적더니 커다란 안경을 쓴 할머니한테 클립보드를 넘겨 줘. 아저씨를 보고 있는 건 아저씨가 너무 수상하게 생겼기 때문이야. 하지만 아저씨가 좀 있으면 커다란 의사 가운을 입은 의사 선생님이랑 얘기를 하고 사무실로 들어가서 어른들 얘기를 할 거라는 게 보여서, 더 알기 싫은 마음에 머릿속으로 노래를 불러. 족제비 아저씨가 몸을 돌려서 날 다시 쳐다봐. 아저씨한테 수염이 달려 있는 걸 상상하다가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고 일부러 눈을 깜빡이곤 다시 원숭이 기사를 읽어. 뭐 족제비처럼 생긴 게 아저씨 잘못은 아니겠지.

 

결국, 짧고 검은 머리를 가진 커다란 아줌마가 우릴 안으로 불러. 아줌마는 초록색 병원 유니폼을 입고 있어. “매덕 씨, 릴리안 들어갈 준비 됐습니다.”

 

매드윕이에요.” 내가 아줌마한테 말해. 나는 원숭이 과학 잡지를 다시 집어넣고 엄마랑 간호사를 따라 문 안으로 들어가.

 

병원은 마치 미로 같아. 복도는 다른 복도로 이어지고 막힌 통로에는 사무실이랑 옷장들이 있어. 병원의 중심에는 미노타우르가 사는 게 분명해. 미노타우르는 학교에서 읽는 오래된 이야기에 나오는 괴물이야. 미노타우르는 커다란 미로에 살았는데 사람들이 그 미로에 가서 길을 잃으면 잡아먹곤 했대. 미노타우르는 사람 같지만 머리가 소 머리야. 완전한 소는 아니고, 머리만 소야.

 

우리는 침대가 딸린 작은 방에 들어갔는데 침대에는 병균을 방지하기 위해 종이가 깔려 있어. 테이블 위에는 종이로 만들어진 원피스가 있어. 병원은 종이를 참 좋아해.

 

아가, 이 가운으로 갈아입어야 한단다.” 간호사 선생님이 말해. “그리고 장신구나 쇠로 된 피어싱이 있으면 전부 벗어야 해.”

 

왜냐하면 MRI는 자석을 쓰기 때문이야. 엄마가 여기 오기 전에 말해 줬어. 커다랗고, 힘센 자석이라 쇠붙이를 몸에서 확 찢어낼 수 있다고 했어. 미노타우르가 MRI를 찍으면 코에 달린 쇠 코뚜레가 자석에 끌려가 버릴 거야. 소들은 왜 코뚜레를 하는 거지? 펑크를 좋아하는 소들만 그럴지도 몰라. 나는 장신구나 피어싱은 없어서 괜찮겠지만, 상황이 나빠지면 나쁜 말 벌금통에 돈을 넣어야 할까봐 동전을 엄청 많이 갖고 왔어. 주머니가 없어서 손에 쥐고 있다 보니까 땀에 젖어 버렸어. 엄마가 나 대신 갖고 있어 준대.

 

간호사가 나가고 나서 나는 종이 원피스를 입고 테이블 위에 앉아서 다리를 흔들며 기다려. 딱히 할 일이 없거든. 엄마는 조용해. 아마 결과가 걱정돼서 그럴 거야. 엄마는 의사들이 내 머리에 종양밖에 안 들어 있다고 말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일은 없을 거야. 내 머리는 종양으로 가득 차 있지 않단 말야.

 

파스찰은 언제 받을 수 있어요?” 내가 물어.

 

엄마가 올려다봐. “오늘 말 잘 들으면, 집에 가서 그 장난감에 대해 얘기해 보자.”

 

방금 엄마가 무슨 수법을 쓴지 나도 말아. 집에 가면 파스찰을 준다고는 안 했고, 집에 가면 얘기만 할 거라고 했어. “이거 끝나면 주신다고 했잖아요. 얘기하는 게 아니라.”

 

집에 가서 얘기해.”

 

난리 안 피울 거야. 그러고는 싶어엄마가 왜 말을 바꾸는지에 대해 소리치고 싶지만, 내가 소리를 지르면 그걸 이용해서 나한테 파스찰을 돌려주지 않을 거야. 이건 시험을 하고 있는 거라구. 엄마는 파스찰을 안 돌려주려고 날 일부러 화나게 하려는 거야. 화 안 낼 거야. 난 그냥 엄마를 쳐다보면서 난리를 치는 상상만 해. 엄마도 날 쳐다봐. 내가 뇌로 보내고 있는 장면을 엄마가 받고 있는지 궁금해져서 웃음이 나와. 엄마도 날 보며 웃어.

 

초록색 옷을 입은 간호사 선생님이 돌아오더니 엄마한테 내 건강에 대해 질문을 해. 내가 임신 중이냐는 질문까지. 그리곤 이제 갈 시간이라고 해서, 난 무서워 보이는 엄마를 한 번 안아주고 간호사 선생님을 따라 복도와 복도를 지나 커다란 기계가 있는 방으로 들어가. 무슨 공상과학영화에 나오는 것 같이 생겼어. 내가 테이블에 누우면 이 커다란 금속 도넛 속으로 쏘아져서 다른 차원으로 들어가는 거지. 아님 나를 도넛으로 만드는 기계인지도 몰라. 그럼 진짜 맛없는 도넛이 되겠다. 젤리도 들어있을 거고. 난 젤리가 들어있는 도넛이 싫어.

 

얘야, 좁은 공간을 무서워한다면,” 간호사가 말해. “조금 답답하게 느껴질 수는 있지만, 그래도 움직이지 말고 누워 있어야 한단다. 좀 있음 주사를 맞을 건데—“

 

잠깐, 뭐라고? 주사? 갑자기 바늘이 왜 나와? 바늘 얘기는 아무도 안 해줬단 말야!

 

그냥 마시면 안 돼요?” 내가 물어.

 

이런, 안 된단다, 아가.”

 

동전 하나는 나쁜 말 벌금통에 들어가야겠네.

 

간호사는 바늘을 빼지도 않고 그냥 내 팔에 꽂아 둬. 이제 이 간호사 너무 싫어. 나는 누워서  나쁜 생각을 하면서 간호사를 쳐다보고 간호사는 꼬불꼬불한 튜브가 달린 이상한 기계를 끌고 오더니 내 팔에 꽂혀 있는 바늘의 다른 쪽 끝을 거기에 연결해. 세상에, 쳐다보기도 싫어. 토할 것 같아.

 

들어간다, 금속 도넛 안으로. 나는 숨을 참고 파스찰에 대해 생각해. 메러디스에 대해서도. 오늘 메러디스는 나 없이 학교에서 뭘 할지 궁금해. 아무도 안 태우면 좋겠는데. 뭘 태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쉽게 화를 낼 수 없다면 정말 힘들 것 같아. 나라면 맨날 다 태우고 다닐걸. 팔이 되게 따뜻해져. 왜 그 검은 여자는 쇼핑몰을 돌아다니고 있었는지 궁금해. 한번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이 너무 많아. 머리가 터질 것 같아.

 

어쩌면 나한테 정말 종양이 있는지도 몰라.

 

MRI 기계는 엄청 시끄러워. 누가 쇠로 된 마트 쇼핑카트를 끌고 가는 소리가 나. 아빠는 그런 카트를 보고 바카트라고 부르는데 왜냐면 바구니같기도 하고 카트 같기도 해서 그렇대. 그치만 엄마는 아빠가 그 단어를 쓰면 싫어해. 나는 엄마를 짜증나게 하고 싶을 때 그 단어를 써. 세상에, 대체 이 안에 얼마나 있어야 하는 거야? 대기실에서도 엄청 오래 기다린 것 같았지만 최소한 그땐 원숭이 과학 잡지라도 읽을 수 있었다고. 여기서도 뭔가 읽거나 볼 수 있는 게 있다면 좋겠지만 아무것도 없어.

 

드디어 밖에 나오니까 다 끝났대. 팔에 있는 주사바늘을 이빨로 뜯어내고 싶은 지경이었지만 간호사가 와서 바늘을 빼고 거기에 밴드를 붙여 줘. 나를 찌른 구멍이 보여. 간호사는 날 휠체어에 앉히더니 나를 복도로 데려가.

 

걸을 수 있어요.”

 

그냥 긴장을 풀으렴.” 간호사가 말하고는 멈춰서서 내 휠체어를 옆쪽에 세워 놓고 꽉 막힌 복도의 사무실들 중 하나로 들어가. 왜 옷이 있는 데로 다시 데려다주지 않고 날 여기다 내버려두는 거지? 간호사는 다시 돌아온다는 말도 없었다고. 뭔가 해야 하나?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겠어. 살짝 어지럽기도 해. , 다들 내 머리에서 종양을 찾은 거구나, 그렇지?

 

여기서 뭘 하는 거니?” 뒤에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와. 나는 누군지 보려고 고개를 돌려. 대기실에 있던 족제비 얼굴 아저씨야. 아저씨는 날 보며 웃어. 나는 저 사람을 몰라서 그냥 아무 말도 안 해. 난 아저씨가 자기를 빤히 쳐다본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눈을 깜빡이고 간호사가 사라진 곳을 다시 쳐다봐. 아저씨 신발에서 또각또각 소리가 나서 나한테 다가오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어. 아저씨는 내 바로 옆에 멈춰 서.

 

릴리 매드윕.” 아저씨가 말해.

 

돌아보면 안 돼. 대기실에서 내가 이름을 말하는 걸 들은 게 틀림없어.

 

미안릴리안 알렉산드라 매드윕.”

 

?! 안 돼, 내 이름 전체를 알고 있잖아. 아냐, 그렇다고 저 아저씨가 나한테 마법처럼 힘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야. 그건 그냥 내가 상상했던 것 뿐이야. 그치만 내 중간 이름은 어떻게 아는 거지? 어쩌면 엄마가 적은 서류 중 하나에 써 있는 걸지도 몰라.

 

아저씨가 날 내려다보는 게 느껴져. 아저씨는 키가 정말 크고 말랐는데 내가 알아챌 수 있는 건 아저씨가 끝이 뾰족한 구두를 신고 있다는 것 뿐이야. 올려다보진 않을 거거든. 바닥만 쳐다보고 있으면 내가 자고 있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아 맞다, 방금 전에 한 번 올려다봤지. 어쩌면 나한테 그 갑자기 잠이 들어 버리는 병이 있을 수도 있지. 지금부터 코를 한 번 골아 볼까.

 

모르는 사람이랑은 말하면 안 된다고 배웠구나. 내 이름은 필릭스야. 아저씨 성도 알려 줄까? 어쩌면 성이 없을 수도 있지. 그렇다면 놀랄 거니?

 

나는 동상이다. 나는 동상이다. 나는 사실 여기 있는 게 아니다.

 

어떻게 하면 널 놀라게 할지 알고 있지! 파스찰에 대해 얘기하면 어떠니?”

 

나는 결국 올려다 봐. 아저씨가 날 내려다보며 미소를 지어. 아저씨는 이빨도 족제비 같아. 그 생각이 멈추질 않아어쩌면 아저씨 성은 족제비일지도 몰라. 필릭스 족제비맨. 대체 어떻게

 

어떻게 파스찰을 아는 거예요?” 아저씨가 복도 쪽을 흘깃 봐. 아무도 안 오는지 확인하려고 그런 것 같아. 아저씨 무서워. 내 생각을 읽고 있어. 지금은 무슨 생각 중일까? 감자. 그냥 감자. 한번 이것도 읽어 보시지, 필릭스 족제비맨.

 

 

아니, 난 생각을 읽을 수는 없어. 그냥 사람들을 잘 파악할 뿐이야그리고 사람들의 비밀들도.”

 

파스찰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 내가 속삭여. 왠지 모르게 크게 말하기는 무서워. 아저씨가 내 말을 듣지 못했으면 하는 것처럼. 그냥 간호사가 와서 엄마한테 휠체어를 끌고 가 줬으면 좋겠어. 엄마는 파스찰이 어디 있는지 알아.

 

필릭스는 무릎을 꿇고 앉아서 내 휠체어의 팔걸이에 손을 올려. 아저씨는 손가락도 족제비 같아. 족제비 같다는 게 아니라, 족제비 손가락 같다는 거야. 족제비들한테 손가락이 있다는 게 아니라. 아니, 뭐 있기야 하겠지. 근데 사람 손가락 같은 건 없을 거야. 만약 족제비가 사람으로 변하게 된다면, 자기 이름을 필릭스 족제비맨으로 짓고 병원에 있는 애들을 괴롭히기 시작할 거야. 안 돼, 이게 바로 그 상황이잖아.

 

미안하다, 릴리, 파스찰이 어디 있는지는 몰라. 하지만 파스찰에 대해서 알고 있단다. 너에 대해서도. 너는 일어날 일들을 미리 볼 수 있지, ?”

 

누구세요?” 내가 물어. 아저씬 확실히 의사는 아니야. 아저씨는 끝에 털이 달린 긴 코트를 입고 있거든. 족제비 털이 분명해. 세상에, 아저씨에 대한 모든 게 족제비잖아.

 

말했잖니, 내 이름은 필릭스야. 난 너와 같단다, 릴리!” 아저씨는 족제비 이빨을 보이며 웃어. 아저씨한테 길고 얇은 수염이 있어서 만화에서처럼 손가락으로 수염을 배배 꼴 것 같아. “나도 능력이 있단다, 너처럼. 그리고 나를 신성함과 연결시켜 주는 토템도 있지.”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요.”

 

아저씨는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체인에 달린 은색 목걸이를 꺼내. 만약 아저씨가 MRI에 들어갔으면 아저씨 코트를 뚫고 튀어나왔을 게 분명해. 목걸이 옆에는 두 개의 갈고리가 있는데, 아저씨가 갈고리를 푸니까 목걸이가 열려. 목걸이 안에는 남자애 사진이 있어. 남자애는 누가 밥그릇을 머리에 씌우고 테두리 모양대로 자른 것 같은 짧은 갈색 머리를 하고 있어. 남자애는 웃고 있는데, 애 치고도 이빨이 너무 족제비 같아.

 

얘는 우리 아들 조셉이란다. 조이라고 불러도 돼.”

 

안녕 조이.” 나는 목걸이 안의 아이에게 말해.

 

필릭스가 목걸이를 닫아. “안타깝게도 조이는 네 말을 들을 수 없단다. 조이는 몇 달 전에 죽었어. “ 이 말을 하면서는 아저씨가 좀 슬퍼 보여. 로저에 대해 얘기할 때의 우리 아빠 같아. “하지만 누가 네 말을 들을 수 있는지 아니, 릴리? 라지엘. 나를 신성함으로 연결시켜 주는 존재란다.

 

그게 무슨 뜻이에요?”

 

라지엘은 나의 천사야. 너의 파스찰처럼 말이야. 라지엘한테 인사를 해 보지 그러니?”

 

머릿속으로 라지엘한테 안녕 하고 인사를 해 봐. 그치만 아무 대답이 없어. 필릭스 쪽을 보니까 날 엄청 집중해서 지켜보는 게 보여. 내가 무슨 말이라도 하길 기다리는 것처럼.

 

라지엘은 어떤 천사예요?” 내가 물어.

 

필릭스는 목걸이를 내 얼굴 앞으로 들어 보여. “직접 물어보지 그러니, 릴리?”

 

라지엘, 너는 천사니? 내가 목걸이한테 물어. 아무 대답이 없어.

 

필릭스가 날 쳐다봐. “뭐라고 하니? 라지엘은 어떤 천사라고 하니, 릴리?”

 

몰라요,” 내가 속삭여. 무서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도 모르겠고, 필릭스가 말하고 있는 게 진짜인지도 모르곘어. “나한테 말을 하질 않아.” 어쩌면 엄마가 내가 진짜 천사를 믿는지 보려고 꾸며낸 비밀 테스트일지도 몰라.

 

필릭스가 일어나더니 코트 주머니에 목걸이를 다시 넣어. “나한테도 말을 하질 않는단다. 나랑 말이 통하는 것도 아니지만 말이야. 그치만 여기 있는 것만은 알아! 그게 내 능력이란다. 난 뭔가를 알 수 있어. 파스찰처럼 아는 건 아니고. 난 너처럼 미래를 볼 수는 없단다. 하지만 다른 것들은 다 알아. 나는 사람들이 숨기고 싶어하는 것들을 알 수 있단다. 비밀들을 알고 있지.”

 

나는 아무 비밀도 없어요.” 없는 것 같아. 난 열린 사람이거든. 진짜로, 난 내 비밀을 사람들한테 다 말해주고 다니는데 아무도 안 믿어.

 

필릭스가 뒤로 한 발짝 물러서고 나서야 나한테 얼마나 가까이 와 있었는지 꺠달았어. 뭔가 갑자기 꽃들로 가득 찬 들판에 서 있는 기분이야. 노란 꽃들 말야. 휠체어에서 뛰어내려서 꽃들 사이를 달리고 싶어. 자유, 바로 자유가 느껴져. 아저씨가 너무 가까이 있어서 내가 깡통을 뭉개는 기계에 들어간 것처럼 답답했다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어. 깡통 릴리.

 

그치, 릴리. 넌 비밀을 가지는 걸 좋아하지 않지, 안 그러니?” 필릭스가 물어. “아저씨도 솔직하게 말해 줄게. 아저씨는 이 동네 사람이 아니란다. 여기저기 여행을 다니곤 했었지! 카니발 좋아하니? 빙글빙글 돌아가는 놀이기구에 타 본 적이 있니? 관람차 맨 위에 올라가서 밑을 내려다본 적이 있니? 나는 멘탈리스트란다. 공연을 하는 사람이지. 마술사처럼 말이야. 마술 좋아하니?”

 

가끔은요.” 마술을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딨어? 지루한 사람들이나 그렇겠지. 과학자들이나.

 

난 내 능력을 이용해서 사람들 비밀을 알아내고 사람들이 잊어버렸던 것들을 말해준단다. 열쇠를 놔둔 장소 같은 것 말야.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기고 싶어하는 일들도 말이지. 그런 것들이 제일 재미있단다! 어떤 비밀이든, 난 알 수 있단다. 네 오빠 로저가 너한테 소중했던 물건을 어디다 숨겼는지도 말이야.”

 

, 이 아저씨 로저가 내 차리자드를 어디 숨겼는지 알고 있잖아! “어디요?”

 

, 진짜 안다는 게 아니란다, 아가. 네 오빠가 너한테서 뭔가 숨겼다는 건 알지만, 어디 숨겼는지 알려면 로저를 만나야 하는데, 로저는 불행하게도 여기 없잖니, 안 그러니? …”

 

젠장대체 간호사는 어딜 간 거야?

 

아무튼,” 필릭스가 계속 말해. “우리 아들 조이는 내 공연에서 조수로 일했단다. 정말 대단했던 아이지. 너도 만났으면 좋아했을 거야. 조이도 네 파스찰에 대해 믿어 주었을 거야. 네 친구 자말처럼 말야! 조이는 라지엘에 대해서도 믿어 줬단다.”

 

머리랑 팔에 있던 열이 사라지고 있어. 조금 머리가 맑아진 느낌이야. “조이한테는 무슨 일이 생겼죠?”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도 알잖니.” 갑자기 필릭스가 웃음을 지워.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나한테 말했는데 내가 못 들은 건가? 어디서 읽은 적이 있던가? 아니, 누가 나한테 뭔가 말해줬다는 거겠지. 필릭스가 계속 날 쳐다봐. , 내가 엄마한테 한 걸 필릭스도 나한테 하려고 하는 건가? 내 머리로 자기 생각을 보내려는--

 

메러디스. 메러디스 때문이구나.

 

메러디스,” 내가 말해.

 

필릭스가 고개를 끄덕여. 맛없는 샌드위치를 한 입 문 것 같은 표정을 하고 있어. 족제비 이빨을 얼굴 안으로 빨아들이려는 건가 싶어.

 

복도 너머로 드디어 간호사가 엄마랑 같이 다가오는 모습이 보여. 엄마가 그 꽉 막힌 방에서 저쪽으로 텔레포트를 타고 온 건지 궁금하네. 둘 다 여기 서 있는 족제비같은 마르고 긴 남자는 못 보는 것 같아. 엄마, 빨리 와!

 

그 애가 가지고 있는 정보를 얻으려고 온 거야,” 필릭스가 속삭여. 목소리가 아까처럼 들떠 있지 않아. 거의 그르렁거릴 듯한 목소리야. 이빨을 꽉 물고 그 사이로 말을 하고 있어. “그런데 대신 널 발견한 거란다. 두려워할 필요는 없단다, 아가야. 나는 메러디스를 찾아낼 거야. 한 번 찾아낸 적이 있으니, 다시 찾을 수도 있겠지. 그 애로부터 사람들을 지켜줄 누군가가 필요하지 않겠니.”

 

필릭스 아저씨가 말을 멈추더니 어깨 너머로 뒤돌아 봐. “누구 오니?” 그리곤 고개를 다시 돌려서 날 향해 웃어 보이는데, 행복한 웃음이 아닌 것 같아.

 

필릭스는 내 어깨에 손을 올려. “다 괜찮을 거야. 곧 만나자.” 그리곤 복도 반대편으로 가더니 자기가 왔던 미로 같은 통로들 사이로 사라져 버렸어.

 

몸을 떠는 걸 멈출 수가 없어. 필릭스 족제비맨은 어딘가 너무 공포스러워. 족제비같은 얼굴 때문이 아니라, ‘진짜로미친 사람을 드디어 만난 것 같아서야. 다른 애들, 특히 제프리 베이커 같은 멍청이들이 가끔 나를 미친 릴리라고 부르지만, 걔들은 필릭스 같은 사람은 실제로 만나본 적도 없어. 필릭스는 첫인상은 정말 조용하고 정상으로 보였단 말이지. 내 비밀들을 아는 것만 빼면 말야. 그것도 거짓말인지 아닌지 모르겠어. 진짜 그 목걸이 안에 천사가 있는지, 정말 있다면 왜 나한테 말을 하지 않는 건지 궁금해.

 

엄마랑 간호사가 드디어 몇 분 후에 진짜로 나타나더니 내 옷들이 있는 곳으로 데려가서 옷을 갈아입도록 해 줬어. 나는 빨리 나가고 싶어서 최대한 급하게 옷을 갈아입어. 엄마는 자기 가방에 넣어 두었던 내 동전들을 다시 돌려 줘. 난 엄마한테 몇 개 줘야 할 것 같다고 말해.

 

차에서 엄마는 내 기분이 어떤지, 혹시 시야가 흐릿하진 않은지 물어. 나는 괜찮다고 말해. 엄마한테 필릭스 얘기는 안 해. 라지엘 얘기도 안 해. 메러디스 얘기는 절대 안 해. 엄마한테 뭘 말해도 되고 안 되는지 더 이상 모르겠어. 스스로 생각을 알 줄 알아야겠어. 내가 진짜 해야 할 일은 파스찰이랑 얘기를 하는 거야. 그렇지만 이런 얘길 엄마한테 하면 파스찰을 돌려받지 못할지도 몰라. 그냥 그 족제비 아저씨 필릭스가 우리 학교에 가지만 않았으면 좋겠어.

 

집에 가니까, 아빠가 작업실에 있어. 아마 장송곡을 쓰고 있었을 거야. 맨날 그러거든. 엄마는 나보고 식탁에 앉아서 기다리래. 저녁으로 뭘 먹을지 궁금하네. 아마 토나오는 음식이겠지. 병원에서 준 약을 먹으니까 속이 안 좋다고 우기면 피자를 시켜주게 할 수 있을까? 엄마가 아빠랑 같이 돌아오는데파스찰! 파스찰, 어디 있던 거야?

 

파스찰은 내가 혼자 견뎌내야 했던 것들에 대해 미안하다고 말해. 가끔은 강해지기 위해서 혼자 힘든 일을 이겨내기도 해야 한대. , 엄마아빠한테 잔소리를 듣는 기분이야. –아 듣고 있구나. 저 둘도 얘기를 하고 있어. 하지만 난 듣지도 않고 있어. 파스찰을 만나서 너무 기쁘거든.

 

알아듣겠니?” 아빠가 물어.

 

사실 하나도 못 알아들었어.

 

.” 내가 대답해.

 

아빠가 나한테 파스찰을 건네 주자마자 나는 가슴팍으로 파스찰을 꼭 껴안아. 할 말이 너무 많아.







외부 공유시 출처를 밝혀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