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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 괴담] 우물 속의 앨리스레딧 번역 괴담/단편 2018. 4. 21. 03:17
내 동생 앨리스에 대해 누구한테 얘기해본지도 참 오래됐다.
나는 악몽이 멎어들 때까지 꽤 오랫동안 상담을 받았다. 앨리스를 최대한 잊어버리고, 그 애가 사라진 날과 나 혼자 자라야만 했던 수많은 해들에 느꼈던 감정들과 상처, 상실감을 완화시키기 위해 많이 노력했다. 앨리스의 사진에 눈길을 준 지도, 그 애가 밝은 색의 크레용들로 직접 그린 생일 카드를 열어본 적도, 엄마랑 클레어 이모랑 우리가 같이 지낸 목가적인 여름 날들을 되새겨본 적도 정말 오래됐다.
정말 오래 되었지. 다 나아진 줄 알았다. 아마 정말 그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오래된 상처는 다시 찢어발겨지고 말았고, 난 이제 마구잡이로 피를 흘리며, 뭘 해야 할지도 모르고 있다.
혹시라도 내가 이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보면 가족이나, 경찰이나, 친구나, 학교 지도교사나, 상담사가 못한 일을 당신들이 해내서 나한테 이 일들이나 나 자신에 대한 이해를 시켜줄 수도 있겠지.
앨리스는 내가 4살일 때 태어났다. 그 앤 우리 엄마와 클레어 이모를 똑 닮은 천사같은 아이였다. 그 밝은 머리카락은 절대 어두워지지 않았고, 베이비 블루 색의 눈은 언제까지고 풍성하게 늘어진 금발머리 사이의 보석 두 개처럼 푸르게 빛났다.
참 행복한 아기였으며, 행복한 작은 소녀였다. 나는 개구쟁이여서 말썽에 휘말리곤 하느라 앨리스와는 어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우린 많이 가까운 사이였고 서로가 아닌 다른 사람한테 얘기하는 일이 드물 정도였다. 아빠는 우릴 보며 자상하게 웃고는 등을 토닥이곤 했다. 엄마는 미소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마 우리가 여느 자매들처럼 싸우지 않아서 좋아하셨던 것 같다. 우린 평화로운 가족이었다.
여름이면 아빠는 출장을 떠나고, 엄마와 앨리스, 그리고 나는 아빠가 없는 동안 클레어 이모를 찾아가곤 했다. 클레어 이모는 도시 외곽의 조그만 경지에 살았는데, 엄마랑 이모가 이야길 나누거나 책을 읽거나 바쁘게 뭔가 할 동안 앨리스와 나는 숲을 지나 개울로 놀러가곤 했다.
그 경지에는 우리가 가면 안 되는 장소들이 있었다: 개울이 끝나는 쪽의 절벽에 가까이 가면 사암과 이끼에 미끄러져 떨어질 수도 있으니 안 된다; 울타리에 가까이 가면 이웃들이 불법 침입자로 오해할 수 있으니 안 된다; 그리고 경지 구석 쪽에 있는 오래된 우물은 사용하지 않아서 으스러지고 있으니 가까이 가면 실수로 빠질 수 있어서 안 된다.
앨리스와 나는 첫번째와 두번째 규칙은 자주 깨곤 했지만, 우물은 클레어 이모 집에서 꽤 멀었고 우리가 아무리 규칙을 깨고 싶은 기분아 들더라도 둘이 동시에 거길 가고 싶어한 적은 없었다.
여름 날들은 내가 13살이 되고 앨리스가 9살이 되기 전까지는 항상 그렇게 좋았다. 7월의 어느 끔찍한 날, 내 13번째 생일으로부터 2주 후, 앨리스와 나는 계획을 세웠다. 우린 점심 도시락을 싸서 손전등을 숨겨 넣었다. 물 한 병도 챙겼고 앨리스가 태양에 타지 않도록 썬캡도 씌워 주었다. 난 혹시나 상상 속의 위험이 닥칠 것을 대비해 휘두를 주머니칼도 준비했다. 우리는 항상 가던 숲길을 걷기 시작하며 서로 속닥거렸다: 우린 우물에 갈 작정이었다.
가는 길은 대부분 괜찮게 흘러갔다. 우린 웃고 쿵쿵대고 떠들었으며, 꽃을 꺾어서 서로의 머리에 꽂아 주었다. 클레어 이모는 이모 반지 하나를 앨리스가 끼게 해 줬는데, 얇은 은색 링에 밝은 푸른색 원석이 박혀 있었고, 햇빛을 받으면 반짝거렸다. 반쯤 와갈 때, 우리는 싸온 점심을 먹기 위해 잠시 멈췄다가 다시 여정을 떠났다. 점심 휴식을 취하고 일어나다가 앨리스가 발을 헛디뎌 발목을 긁혔다. 양말로 피가 천천히 흘러내렸고 나는 다시 걸어가기 전 앨리스에게 밴드를 붙여 주었다.
우물에 도착했을 때는 엄청 오래 걸은 느낌과 눈 깜짝할 새에 도착한 느낌이 동시에 들었다. 우린 아마도 뭔가 미스테리한 것이 거기에 숨어 있을 거라고 기대했던 거 같다. 거긴 우리에게 금지된 장소였는데, 분위기는 전혀 맞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도 잠시, 우린 곧바로 탐사를 시작했다. 나는 괜찮은 돌멩이 하나를 주웠고, 앨리스는 꽃을 더 꺾었다. 앨리스는 꽃들을 엮어내려고 애썼는데, 갑자기 멈추더니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꽃을 내려놓고는 내 쪽으로 터덜터덜 걸어왔는데, 그 조그만 게 갑자기 엄청 피곤해 보였다.
앨리스는 눈을 내리깔며 배 위로 팔을 올려놓더니 말했다. "언니, 나 기분 안 좋아. 집에 가면 안 돼?" 앨리스의 올려다보는 눈에선 급함과 애원이 느껴졌다. 나는 돌멩이를 내려놓곤 남은 음식이 든 가방을 어깨에 걸쳐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지, 앨리-캣." 나는 앨리스의 손을 잡고 발길을 돌려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몇 초밖에 걷지 않았는데 앨리스가 멈춰섰다. 앨리스는 잡고 있던 손을 떨구고는 뻣뻣하게 굳은 채 섰다. 눈을 크게 뜬 채 앨리스가 나를 다시 쳐다봤고, 나는 두려움에 울렁거림을 느꼈다.
우리가 서 있던 곳에 갑자기 어둠이 깔리는 거 같았다. 나는 움직이려고 했지만, 바닥에 고정된 채 움직일 수 없었다. 반면 앨리스는 가만히 있으려고, 혹은 나한테로 오려고 애쓰는 거 같았는데, 나는 앨리스가 뒤돌아서 뻣뻣하게 우물 쪽으로 걸어가는 걸 쳐다보고만 있어야 했다. 움직이려고 무진장 애쓰고 힘을 줘 보았지만 아무 소용도 없었다. 머릿속에서 우리가 심각한 위험에 처했다는 원초적이고 동물적인 공포가 울려퍼지고 있었고, 당장 도망쳐서 여기서 벗어나 다시는 돌아오면 안 된다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나는 움직일 수 없었고, 앨리스는 멈출 수 없었다.
우물은 만화에나 나올 법한 오래된 형식이었다. 둥근 돌담 위로 지붕이 있고, 만약 여전히 사용되는 우물이었다면 양동이가 걸쳐 있었을 듯한 작대기가 있었다. 어린아이가 빠질 수 있을 만큼 컸다. 텅 빈 채 말라 있었고, 지붕은 무너져가고 있었다.
나는 동생이 돌담을 기어오르는 걸 지켜보았다. 앨리스는 고개를 돌려 두려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면서, 클레어 이모의 반지를 빼서 우물 안으로 떨어뜨렸다. 온몸이 찌릿하고 근질거렸다. 뒷목의 털이 곤두서는 느낌이 들었다. 폐에서 공기가 전부 빨려나가는 거 같았다. 앨리스는 몸을 기울여 우물 벽 위에 앉았다. 몸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구역질이 올라왔다. 어떤 힘이 나를 움직이지 못하게 잡는 동시에 공포가 나를 얼어버린 듯한 상태로 만들었다. 나는 앨리스의 이름을 부르기 위해 입을 벌릴 수 조차 없었다.
앨리스는 안쪽으로 뛰어내렸다.
나는 머릿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소리치고 또 소리쳤다. 바깥 쪽에선, 움직이지 못한 채 가만히 있었다. 공황과 공포가 내 안에서 소용돌이쳤고, 충격과 믿을 수 없는 느낌이 들었다. 피부는 불타는 느낌이었고 혈관들은 얼음처럼 차가웠다. 어떤 소리가 들려왔는데, 주변 세상에서 들려오기보다는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거 같았다; 어떤 장대한 야수의 움직임에서 나오는 듯한 소리, 인간 어린아이의 머릿속을 수천년이고 지배한 공포가 움직이는 듯한 소리. 나는 풀려났다. 바닥으로 쓰러져 구토를 했다. 몸을 일으켜 우물로 달려갔다. 손으로 우물을 짚고 눈을 매섭게 뜬 채 새카만 어둠 속을 살폈다. 앨리스의 이름을 소리쳐 보았다.
어떻게 집에 갔는지도 모르겠다. 뛰던 게 기억난다. 집이 보이고, 엄마와 클레어 이모를 고래고래 부르던 게 기억난다. 그 둘의 눈에 보이던 공포가 기억난다.
우물이 범죄 현장으로 변한 것도 기억난다. 울면서 경찰관한테 말한 것도. 내 토사물과 두고 왔던 가방이 증거물이 됐던 것도 기억난다. 주머니칼도 압수당했다. 우리가 우물에 가려고 출발했던 건 오전 10시였는데 내가 집으로 애타게 돌아온 건 밤에 가까워지는 저녁이었던 것도 기억난다. 여전히 내 안에 울리고 있던 공포의 메아리 속에서 멍한 상태로 돌아다니던 게 기억난다. 그 공포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내 상담사는 내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후유증)이 있다고 했다. 내가 불안장애가 있으며, 사람들과 상황을 믿지 못하는 문제가 있다고 했다. 난 언제나 경계 상태에 있다. 예전엔 또다시 그 힘과 공포에 사로잡히는 최악의 악몽들을 꾸곤 했었다. 나와 가족이 앨리스의 실종 후 몇 달이고 울던 걸 생각하며 무너져내리곤 했다. 여전히 외로운 밤이면 그 일을 생각하며 울고, 아직도 그 장면들이 스쳐지나가곤 한다. 아직도 나를 괴롭히는 두려움의 유령이 느껴진다.
나는 그 일을 실종이라고 부른다. 아마도 사망이라고 불러야 하겠지만, 시체는 발견되지 않았다. 경찰이 우물과 그 주변 숲, 심지어 클레어 이모의 집과 이웃들의 집, 우리 집까지 뒤졌었다. 앨리스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 마치 앨리스가 우물로 떨어지면서 허공으로 사라져 버린 것 같았다. 내가 앨리스는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나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하려고 했을 때, 클레어 이모는 날 위로하면서 무서워했어도 괜찮다며, 가끔 사람들은 얼어 버리곤 한다며, 앨리스는 우물이 얕을 줄 알고 괜찮을 거라 생각했을 거라고 말했다. 아무도 날 믿지 않았고, 이상하고도 끔찍한 우물 추락 사건은 결국 더 이상 다뤄지지 않았다. 우물의 입구는 덮여졌다.
학교에서 난 점점 조용해지고 혼자 다니기 시작했다. 공부는 알아서 했고 다른 건 별로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같이 살려고 노력했다고 정말이지 생각하지만, 아빠는 그때 같이 있어주지 못한 것에 대해 자신을 책망했고, 엄마는 내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며 나를 책망했다.
나는 학교 지도교사에게 보내졌고, 선생님은 상담 치료를 받는 걸 추천했다. 몇 달이 지나고도 내가 전혀 나아지지 않자, 나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처방받았고 약물과 간헐적인 상담을 통해 나는 겨우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었다. 부모님은 내가 9학년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혼했다. 나는 엄마와 살게 되었고, 아빠는 내 인생에서 사라져 버렸다.
난 이 일에 대해 생각하지 않으려고 노력해 봤다. 나는 여전히 혼자 다니고, 불면증에 익숙하며 여전히 약을 먹고 있고, 항상 경계 태세를 취하고 있다. 엄마랑은 사이가 안 좋고 아빠가 어딨는지는 전혀 모른다. 앨리스가 있는 어린 시절의 사진들은 전부 상자에 넣어서 치워 버렸다.
지난 주 클레어 이모가 돌아가셨다.
엄마와 나는 이모네 집으로 갔다.
우린 이모의 물건들을 치우고, 집을 팔기 위해 정리를 시작했다.
엄마한테 내가 마지막 물건들을 우리 창고로 옮기겠다고 말했고 엄마는 집에 갔다.
난 우물로 향했다.
기억했던 거보다 오래 걸어야 했다. 나무들 사이사이 여름 해가 비쳤다. 살짝 바람이 불어왔고, 가는 길은 거의 평화로운 느낌이었다. 내가 왜 거길 갔는진 모르겠다. 상담사는 아마 내가 모든 일의 종점이 필요했다고 말할 것이다.
우물에 도착했을 때는, 숲이 정말 고요했다. 나는 굳어 버렸는데, 갑자기 그 공포가 나를 붇잡을 것이라고, 우물로 걸어가서 내 몸을 던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하지만 아무 일도 없었다. 안도감이 들었고, 벅찬 느낌에 목이 메인 채 팔을 늘어뜨린 자세로 내 동생을 죽인 그 장소를 바라보았다. 천천히, 차분하게 살아 있는 숲의 소리가 다시금 들려왔다. 새가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나뭇가지와 잎사귀가 스치는 소리가 났다. 나는 돌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우물 가장자리에서 파란 반지가 반짝였다. 앨리스의 반지가.
나는 잠시 동안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다 나는 앞으로 달려나가 반지를 낚아채 재빠르게 그곳에서 달아났다. 멈춰야 할 때까지 계속 달렸고, 집에 도착했을 땐 미친 듯한 공황과 가쁜 숨 속의 흐려진 상태였다. 집 문이 잠긴 걸 확인하고는 차에 허둥지둥 탔다. 빠르게 집으로 운전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우리집 부엌 테이블에 앉아 있다. 클레어 이모의 마지막 물건들은 내 차에 있다. 앨리스의 반지는 부엌 카운터에 올려져 있다. 지고 있는 햇빛을 받으며 빛나고 있다.
오늘 밤 앨리스의 꿈을 꿀 것을 이미 알고 있다. 난 아마, 정말 아마도 그 날 우리에게 있던 일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이 존재할 거라는 믿음을 갖고 있었다.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그때 날 움직이지 못하게 붙잡고 앨리스를 거기로 기어오르게 만든 게 뭔지도,
반지가 어디서 나타난 건지도,
앨리스의 시체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그리고 이제 나한테 무슨 일이 벌어질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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