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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딧 괴담] 폭풍우레딧 번역 괴담/단편 2018. 8. 11. 04:13
나는 어릴 때부터 폭풍우를 정말 좋아했어. 굵은 빗줄기, 커다란 천둥 소리, 번쩍이는 번개는 나한테 굉장히 원초적인 두려움을 심어 주는데, 그 기분이 너무 좋아. 그래서 이번에 새로 산 폰을 사용해 폭풍을 슬로우모션 영상으로 찍기로 했어. 내가 자주 방문하는 게시판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에 말야.
내가 뭘 발견하게 될지 난 전혀 몰랐어.
폰을 방수케이스에 넣고 삼각대와 함께 뒷마당에 설치했어. 슬로우모션 모드로 바꾸고, 녹화 버튼을 누르고, 안으로 재빨리 들어갔어. 프레임 구도의 반은 하늘이, 반은 마당이 찍히도록 조심스레 조절해 뒀지. 번개가 잔디와, 나무와, 정원 장식들을 비추면 멋있기도 하고 살짝 으스스하기도 할 것 같았거든.
집 안에 들어와서는 TV와 모든 불을 다 끄고 그저 폭풍의 분위기에 취했어. 천둥이 창틀을 흔들고 빗방울은 유리를 내리치고. 번개의 엄청난 빛이 마당을 흠뻑 적셨고, 무서운 그림자들을 만들다가 완전한 어두움만을 남기고 떠났지. 완전히 내가 바라던 폭풍이었어. 그저 영상이 제대로 찍히기만 바랄 뿐이었지.
20분 정도가 지났고, 꽤 좋은 부분을 찍었다고 생각이 들어서 용량이 꽉 차기 전에 빨리 가지고 들어와야겠다고 결정했어. 나는 밖으로 뛰쳐나가, 삼각대와 폰을 챙기고, 한번에 문을 확 열어재껴 다시 들어오려고 했어. 안타깝게도, 문을 열자마자 따뜻하고 안락한 우리 집에서 딱 한 발자국 떨어진 차가운 진흙탕에 미끄러져 빠지고 말았어. 그 순간 빨리 안으로 들어갈 생각도 들지 않았어. 핸드폰이 깨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온몸이 젖고 있다는 사실은 신경도 안 쓰였지. 카메라 렌즈를 살펴보자, 기스 하나 없이 깨끗했어. 뒤집어서 전면 액정을 보자... 역시 깨끗했지. 다행이야! 하고 안으로 들어갔어.
옷을 대충 갈아입고, 컴퓨터에 폰을 연결한 후 영상을 보기 시작했어. 처음 1분 30초는 그저 시커먼 어둠 속에서 멀리서 들려오는 천둥 소리와 함께 빗소리만 들렸어. 첫번째 번개가 번쩍했을 땐, 척추를 타고 소름이 끼쳐왔어.
마당 맨 뒤쪽에, 아주 선명하게, 누군가 움직임 없이 카메라를 등지고 서 있었어. 나는 영상을 멈췄어. 번개의 불빛은 덥수룩한 머리와 진흙이 묻은 찢어진 옷을 보여주기엔 충분했지만, 다른 건 보이지 않았어.
밖엔 분명 아무도 없었어.
우리집 마당은 울타리로 둘러싸여 있어. 마당 문은 오래되고 녹슬어서, 열리면 끼이익 하는 소리가 나기 때문에 내가 들을 수 있었을 거야. 마당엔 나무 몇 개 말고는 전부 60cm가 안 되는 것들 뿐이고. 내가 보고 있는 게 대체 뭐란 말이야?
영상을 계속 재생했어. 다음 번개 불빛 아래에서는, 그 형체가 움직이는 걸 볼 수 있었어. 이제 조금 더 자세히 보였지. 나이든 할머니처럼 보였어. 동네 이웃은 아닌 것 같았어. 그 다음 번개 땐, 멀지 않은 곳에 있었지만 이리저리 천천히 돌아다니는 모습이 길을 잃었거나 혼란스러운 느낌이었어.
나는 아랫층으로 뛰어가 뒷마당 현관 불을 켰어. 빗줄기 사이를 열심히 살폈지만, 마당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어. 아무도 없었다고.
컴퓨터로 돌아왔어. 번개가 내리칠 때마다 이 할머니가 보였어. 할머니는 빙글빙글 원을 그리며 도는 것 같았는데, 카메라에 가까이 오질 않아서 자세히 볼 수가 없었어.
결국, 16분쯤 지나고 나서, 할머니가 카메라 가까이에서 서성였어. 집 앞쪽에서 내리친 번개 불빛이 할머니의 얼굴을 비췄고, 카메라가 아주 잠깐 할머니에게 초점을 맞췄어.
할머니의 눈은 초점이 없고 흐린 회색이었어. 머리카락은 흙덩이로 뭉쳐져 헐클어진 채, 할머니의 야위고 썩어가는 얼굴을 감싸고 있었지. 볼과 목에서 살점들이 떨어져 나가 있었어. 상체에서는 살이 엄청나게 떨어져 나가 갈비뼈가 드러나면서 빛을 반사했지. 갈비뼈는 텅 빈 동굴을 지키고 있는 느낌이었어. 오랜 시간 동안, 나는 눈을 뗄 수가 없었고, 다시 마당엔 어둠이 드리웠어.
내가 앉아있는 동안 영상은 계속되었고, 나는 내가 본 게 뭔지 이해하기 위해 머리를 굴리고 있었어. 녹화하는 동안에 계속 마당을 보고 있었는데 아무도 없었단 말이야. 내가 놓친 걸끼, 아님 오류일까? 아님 누군가의 장난? 말도 안 돼, 그럴 리가 없단 말이야. 그리곤, 스피커에서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어.
할머니는 걸음을 멈추고 머리를 돌려, 소리가 나는 곳을 바라보았어.
영상이 위로 들어올려지고 움직일 때쯤엔, 할머니는 어디에도 없었어.
영상이 바닥을 내려칠 때엔 의자에서 뛰쳐내릴 뻔했어. 핸드폰을 떨어뜨렸던 걸 잊고 있었지.
카메라 렌즈를 살펴보는 겁에 질린 내 얼굴이 클로즈업된 채 나타났어. 그런데 뭔가 초점이 나간 채 내 어깨를 스치고 지나갔어.
내가 전면 액정을 살펴보는 동안 영상은 앞뒤가 돌아갔어. 그러자 할머니가 열린 문을 통해 우리 집으로 들어가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모습이 보였지. 내가 문을 닫는 소리와 함께 텅 빈 거실이 화면에 잡히며 영상은 끝났어.
화면을 껐어. 핸드폰을 뽑아서 쓰레기통에 던졌어. 나는 조용히 앉았고, 무시할 수 없는 느낌이 머릿속을 괴롭혔어.
서늘한 느낌이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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