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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딧 괴담] 러브 시뮬레이터™
    레딧 번역 괴담/단편 2018. 12. 17. 20:29

    원출처





    "너 진짜 자기합리화 심한 거 아냐?"

    "난 최선을 다하고 있을 뿐 --"

    "너를 위한 최선이야, 아님 우릴 위한 최선이야?" 내가 물었다. "그거 알아? 난 -- 난 댄이랑 결혼했어야 했어!"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다. 전 애인들은 기억 속에서 미화되어 시간이 지날수록 더 나아 보이는 법이니까.

    하지만 너무 늦었다. 토미는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나는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채 소파에 주저앉아 버렸다. 계속 벽만 쳐다보다가 나는 노트북을 꺼내 검색창에 "잘못된 남자와 결혼했을 때 대처법"을 검색했다. 도움이 되는 기사나 이혼에 관련된 간단한 설명서라도 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런데 뭔가 다른 게 떴다.

    결혼 생활에 문제가 있나요? 러브 시뮬레이터™을 사용해 보세요! 단돈 19.99달러!

    궁금해져서 클릭해 봤다. 사실 포르노 사이트가 뜰 거라고 반쯤 의심하기도 했다. 뭐 그것도 나에겐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건 아니었다. 사이트 하나가 떴다. 검정색 배경 위에 핫핑크색 명조체라니, 무슨 90년대 사이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러브 시뮬레이터™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잘못된 사람을 결혼할까 봐 겁이 나나요? 아님 이미 잘못된 사람과 결혼해 버린 것 같나요? 아래에서 알아보세요!

    아래에는 빈칸을 채울 수 있게 밑줄들이 그어져 있었다.


    당신의 이름.                당신 애인의 이름.               

    당신의 페이스북 페이지.               당신 애인의 페이스북 페이지.               

    이곳을 눌러 사진, 영상, 음성 파일을 업로드하세요.

    더 많은 정보를 제공할수록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는 것을 숙지하세요!


    그냥 헛소리겠지. 하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머릿속을 환기시킬 것이 필요하긴 했다. 어쩌면 좀 웃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커서가 등록 버튼 위를 맴돌았다.

    딸각.

    로딩된 화면은 후진 그래픽으로 만든 심즈 느낌이었다. 3D 거실. 상자 같은 모양에 못난 무늬를 가진 의자들. 꽃병에는 꽃의 형상을 아주 희미하게만 닮은 방울 모양들이 있었다.

    남자가 소파에 앉았다. 그의 얼굴은 댄의 것이었는데, 어딘가 이상하게 늘어지고 뒤틀린 모양이었다. 댄의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을 이용해 아무렇게나 원통형 얼굴을 이루고 있었다.

    "안녕. 케이시," 자동화된, 기계음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난. 널 사랑해."

    의도치 않게 웃음이 나왔다. "어, 안녕. 나도 널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을 토미가 아닌 다른 누군가한테 한다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저 컴퓨터 프로그램인데도 말이다.

    "기분은.어때?"

    "어, 사실 별로 좋지 않아, 댄."

    "정말. 안타깝구나," 목소리가 말했다. 오, 꽤 괜찮은데. 음성 인식 기능이 있나 봐... 그리고 옛날에 유행하던 심심이처럼 AI기능도 탑재돼 있는 거 같고.... "싸운. 것. 때문에. 그래?"

    "어, 싸운 거?" 나는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미안해. 나도. 너랑 싸운 거." 픽셀로 이루어진 댄의 눈이 나를 쳐다봤다. "사랑해. 케이시."

    "나도 사랑해."

    "그리고. 그리고," 그것이 고개를 옆으로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나는. 토미처럼. 자기, 합리화. 안 해"

    피가 차게 식는 기분이었다. "뭐-뭐라고?"

    "나라면. 절대. 널 두고. 문을. 세게 닫지, 않을 거야."

    커서를 x버튼 위로 가져갔다. 딸각, 딸각. 창이 닫히질 않았다.

    "떠날. 생각은. 하지 마." 변형된 얼굴을 들이밀며 그가 말했다. "이제 넌 나와. 함께야. 케이시."

    나는 노트북을 세게 닫아 버렸다.

    잠시 동안은 내가 성공한 줄 알았다. 하지만 플라스틱에 묻혀 뭉개진 그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우리. 어떻게. 만났는지. 기억 나?"

    나는 끄덕이며 소파 구석으로 쭈그려 앉았다. "너, 어... 네가 캠퍼스에서 걸어가던 날 멈춰 세웠잖아. 내가 핸드폰을 떨어트리고 갔다면서 돌려줬잖아"

    "한 번이라도. 네가. 핸드폰을. 정말. 떨어트린 게. 아니라는 걸. 깨달은 적이 있어?"

    "어... 무슨 소리야?"

    "내가. 훔쳤어."

    침묵 속에서 귀에 울리는 이명만이 들렸다.

    "내가. 학생이. 아니었던. 건. 알았어?" 스피커에서 지직대며 소리가 흘러나왔다. "난. 캠퍼스 옆. 정비소에서. 일했었어."

    나는 노트북을 집어 바닥으로 내던졌다. 산산조각난 유리와 플라스틱 조각들이 러그를 뒤덮었다.

    그의 목소리가 낮고 뒤틀린 채로 계속되었다.

    "나는. 학생도. 아니었다고. 널. 며칠 동안이나. 지켜봤어. 예쁜. 여대생 년--"

    똑, 똑, 똑.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벌떡 일어나 현관으로 다가갔다. "토미... 너야?"

    대답은 없었다.

    "내가 그런 말을 해서 미안해. 진짜 너무 너무 미안해."

    나무 문을 통해 네 단어만이 들려왔다.

    "어서 시뮬레이션 밖으로 나와."

    달칵. 하고 열쇠가 꽂히는 소리가 났다.

    끼이이이이익

    나는 눈을 감고 비명을 질렀다. 누군가 내 손목을 잡고 현관 밖으로 끌어당겼다.

    "케이시! 케이시!"

    눈을 떴다.

    나는 현관에 서 있는 게 아니었다.

    나는 조명이 흐릿한 방의 침대 위에 앉아 있었다. 축축한 곰팡이 냄새가 밀려왔고, 그림자 속 어딘가에서 삐빅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케이시. 돌아왔구나!"

    돌아보자 그림자 속 누군가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돌아왔다고?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나는 몸을 더 일으켜 세웠다. 갑자기 이마가 간지러웠다. 긁으려고 손을 뻗자 피부 대신 전선이 만져졌다.

    "내가 방금 널 시뮬레이션에서 꺼내 줬잖아."

    낮고 거친, 익숙한 목소리였다.

    안 돼.

    남자가 일어서더니 나한테 걸어왔다. 큰 코, 짧고 어두운 색의 머리가 불빛을 받고 빛났다.

    "댄."

    그가 웃었다. "역시 오래 안 걸릴 줄 알았어. 넌 갖지 못한 걸 더 탐내는 여자애잖아. 토미랑 결혼했어야 했다고 네가 말했지. 그래서 그렇게 해 봤더니... 겨우 이틀동안 시뮬레이션에 있었는데 벌써 토미한테 나랑 결혼했어야 했다고 말했잖아." 댄이 웃음을 터뜨렸다. "토미가 진짜 자기합리화를 잘하긴 해. 그치?"

    피가 차게 식었다.

    기억들이 하나하나 돌아오기 시작했다. 댄과의 결혼식. 몇 주도 지나지 않아 벌어진 싸움. 넌 소름돋는 거짓말쟁이야. 난 토미랑 결혼했어야 했어!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기억이 안 나."

    "내가 널 여기로 끌고 와서 시뮬레이션을 시작했잖아." 댄이 인상을 찌푸렸다. "기억이 안 난다니 신기하네. 너 발버둥치고 소리지르고 그렇게 난리를 쳤으면서."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나는 곧바로 침대에서 뛰쳐나왔다. 전선을 마구 떼어내고 계단을 올라갔다. 뒤에서 댄이 소리지르는 소리, 쿵쾅대는 발소리가 들렸다.

    나는 문을 확 잡아당겨 열었다.

    그리고 그렇게 나는 눈오는 밤 속으로 도망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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