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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레딧 괴담] 여자친구 입 안의 머리카락
    레딧 번역 괴담/단편 2019. 4. 19. 01:08
    원출처





    그녀가 죽은 지 세 시간이 지났다.

    방구석에 앉아서 노트북을 들고 이 글을 쓰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진짜가 아닌 것 같다. 아무것도 현실이 아닌 것 같다. 일주일 전만 해도 같이 휴가를 보내고 있었는데, 이젠... 이젠 이 일을 기록해야 한다. 그게 먼저다. 써 놓지 않으면, 아무도 믿지 않을 거다. 젠장, 나조차 나를 믿을 수 있는지 모르겠다고. 눈을 감으면 그것이 아직도 보이지만, 내 뇌의 일부분은 전부 꿈이었다고 나 자신을 설득시키려 하는 것 같다. 그저 여자친구의 질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서 끔찍하고 정신이 반쯤 나간 악몽을 꾼 것 뿐이라고.

    하지만 악몽이 아니다. 꿈이 아닌 걸 알고 있다. 그리고 내가 이 일에 대한 기록을 남겨 두지 않는다면, 정말 간신히 잡고 있는 정신줄을 놔 버릴 것만 같다.

    *

    포피는 휴가에서 돌아온 후로 머리카락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우린 미얀마로 휴가를 갔었다. 처음으로 긴 여행을 같이 간 것이었다. 포피와 나는 3년동안 사귀어 왔는데, 지난 여름에 드디어 동거를 시작했다. 그 후로 그 여행을 항상 계획해 왔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여행이었던 것처럼 느껴진다. 다른 커플의 여행. 우리는 바간의 사원들을 방문하고, 양곤의 경치를 구경하고, 인레 호숫가에서 일광욕을 즐겼다. 다들 자고 있을 새벽에 칵테일을 마시고는 발가벗은 채 물에 뛰어들기도 했다. 등반도 했었고. 내가 가장 좋아했던 건 등반이었다. 우린 가이드를 따라 여럿이서 마을과 시골길을 걸으며 고추밭과 생강밭을 가로질러 갔다. 별빛 밑에서 잠도 잤다. 그런 긴 여행을 가면 관계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2주나 같이 붙어서 힘든 여행을 다니면 어떤 커플들은 점점 갈라지기도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나와 포피는 그렇지 않았다. 이 여행으로 우린 더 가까워졌다. 지난 몇 년간 가장 행복했던 순간들이었다.

    하지만 우리가 돌아오자마자 상황은 달라졌다. 그때가 처음으로 포피가 머리카락을 발견하기 시작한 때였다.

    머리카락은 포피가 일어났을 때 그녀의 입 안에 있었다. 포피가 그걸 나한테 처음으로 말해준 아침이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 둘 다 직장으로 복귀해야 하는 날이었고, 욕실 세면대 앞에 서 있는 포피를 발견했다. 거울 앞에 얼어붙은 채 말이다. 포피는 여전히 잠옷을 입고 있었는데, 내가 들어가자 돌아보지도 않았다.

    "옷 안 입을 거야?" 내가 물었다.
    "자기야, 10분 안에 안 나가면 기차 놓칠 거야."

    포피가 눈을 깜빡였다. 우리의 눈이 거울 속에서 마주쳤다. 그녀는 살짝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는데, 처음엔 내 말을 듣지도 못한 줄 알았다. 그런데 포피가 왼쪽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진짜 이상하네..." 그녀가 중얼거렸다.

    세 가닥의 하얀 머리카락이 놓여 있었다. 되게 짧았는데, 한 2센티미터 정도였다. 살짝 구불져 있었고. 우리 부모님은 하얀 잭 러셀 강아지를 키우는데, 내가 부모님 집에 갈 때마다 코트에 묻혀 오는 그 하얀 털들과 비슷해 보였다.

    "뭐야, 탈모야?" 장난으로 말한 거였는데, 포피는 웃지 않았다. 그녀의 눈빛은 내 눈을 떠나 손바닥 위의 머리카락들로 향했다가, 다시 내 눈을 바라보았다. 포피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좀 더럽게 들리겠지만, 음.... 어떻게 된 일인지도 모르겠어."

    "응?"

    "이거 내 입에서 나왔어. 일어났을 때 뭔가 간지러운 게 느껴졌거든. 진짜 소름끼쳐. 한입 가득 음식을 입안에 넣었는데 거기서 머리카락이 나온 느낌이랄까." 그녀가 인상을 찌푸렸다. "이게 어디서 나온 걸까?"

    나도 미간을 찌푸리며 손 위의 머리카락을 바라보고는 그저 어깨를 들썩였다. 시계를 슬쩍 보았다. "모르겠네. 자기가 입는 회색 스웨터나 그런 데서 나온 거겠지. 누가 알겠어? 그런데 얼른 나가야 할 것 같아."

    포피가 상체를 숙여 물을 틀었다. 왼손을 뻗어 머리카락들이 물에 씻겨나가 배수관 안으로 빨려들어가는 것을 지켜보았다. 포피가 뭐라고 중얼거렸는데 물 소리 때문에 거의 듣지 못할 뻔했다. "그 스웨터 어디 찬장에 넣어 놨는데. 거의 1년은 안 입었다고."

    *

    지금 와서는 내 자신이 굉장히 원망스럽다. 좀더 진지하게 들어줬어야 했는데. 물론 일이 한번 시작되고 나서는 굉장히 빠르게 흘러갔기에 내가 막을 수 있을지 없었을지는 모르지만, 그래도 시도는 해 봤어야 했다. 포피를 일찍 의사한테 데려갈 수도 있었다. 그날 아침이 아니라면, 다른 증세를 보이기 시작했을 때라도.

    다음 날은 배가 아프다고 했다. 그날은 포피가 머리카락 얘기는 하진 않았는데, 내가 출근하려고 포피를 깨우러 갔을 때 그녀는 일을 나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배에 강한 통증이 느껴진다고 했다. 밤새 그랬다고. 잠도 잘 못 잤다고. 나는 포피의 이마에 키스를 해 주고는 푹 쉬라고 말했다. 아마 어제 먹은 치킨 때문이거나, 장염 정도일 거라고. 잠을 좀 자고 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다.

    하지만 괜찮아지지 않았다. 아홉 시간 후 내가 피곤한 채로 집에 돌아왔을 땐, 포피는 여전히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녀는 내가 들어오자 신음소리 섞인 인사를 해 줬지만, 눈은 뜨지 않았다.

    *

    다음 날 아침 일어나자 포피가 침대에 앉아 있었다. 그녀의 어두운 머리카락은 땀에 뭉쳐진 채 이마에 달라붙어 있었다. 눈은 피곤에 찌들어 반쯤 감겨 있었다.

    "진짜 이해가 안 가네." 포피의 목소리는 약하면서도 심각했다. 그녀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둥그렇게 모은 손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머리카락이 또 나왔어. 또 그 하얀색 것들." 내가 일어나 앉자 포피는 내 쪽을 돌아보았는데, 처음으로 그녀의 표정에서 혼란스러움 그 이상의 무언가가 보였다. 공포에 다다르고 있는 무언가.

    나는 졸린 목소리로 중얼대며 대답을 하기 시작했지만 포피가 말을 끊었다. "어제도 나왔었어, 크리스. 네 알람 울렸을 때 반쯤 깼었는데 머리카락이 느껴졌었어. 조그만 머리카락 세 개가 혀에 있었고 이빨 뒤에도 하나가 있었어." 그녀가 떨었다. "진짜 X발 말도 안 되잖아."

    내가 무언가를 말하기도 전에 그녀는 신음을 내뱉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팔로 배를 움켜쥐면서 상체를 숙였다. 나는 그녀의 팔에 손을 얹고는 고통이 지나가기를 기다렸다. 몇 초가 지나자 그녀는 다시 몸을 일으켜서 나를 쳐다보았다.

    "안 나아졌어?" 멍청하고 뻔한 질문 같았지만 생각나는 게 그거밖에 없었다. 포피가 인상을 찡그렸다.

    "어젯밤에는 좀더 잘 잔 것 같은데, 일어나니까 다시 아파. 간헐적으로 오긴 하는데 계속 아프긴 아파."

    내가 출근하기 전 우리는 포피가 병원에 예약을 하기로 약속했다.

    *

    이후, 오후가 늘어지고 시간이 흘러가면서, 나는 계속 구글링을 했다. 증상들. 국가보건기구 홈페이지. 의학 정보 사이트. 아무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너무 많은 가능성들이 있었다. 미약한 기생충부터 생각도 하기 싫은 병들까지. 그리고 하얀 머리카락들에 대한 증상을 추가해 검색하자, 아무 결과도 나오지 않았다.

    계속 신경이 쓰이던 점은 -- 무시할 수 없음을 알고 있음에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은, 우리가 다녀온 휴가였다. 미얀마 여행. 무서운 얘기들이 들려오지 않는가. 이상한 열대의 병들이 걸려오는 관광객들. 작은 벌레한테 물렸다고 그냥 무시했는데 점점 더 심각해졌다는 얘기들.

    산행길 도중 가이드 하나랑 비슷한 얘기까지 했었다. 킨이었지, 이름이. 어느날 밤 여행객들을 재워주던 마을 사람들 집 바깥을 거닐며 같이 담배를 물고 이야기를 나누었었다. 그의 직업에 대해 얘기하다가, 그 지역의 관광산업에 대해서도 얘기를 했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멍청한 짓을 하는지에 대해서까지.

    "어떤 사람들은요, 정말 존중이란 걸 전혀 몰라요." 킨이 말했다. 밤중에 빛나던 킨의 담배 끝자락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의 실루엣에서 벗어나 천천히 공기 중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 자욱까지도. "다른 사람 집에 손님으로 온 거라는 걸 전혀 인지를 못 한다니까요. 자기가 얼마나 위험한 지역에 있는지도요. 들개들을 쓰다듬고 싶어하질 않나, 뱀 사진을 찍고 싶어하질 않나."

    킨은 내 쪽을 돌아보며 웃었고 어둠 속에서 그의 이빨이 빛났다. "제가 데리고 다닌 관광객 중에 진짜 그랬던 여자분이 있었어요. 지나가다가 독사를 만났는데, 진짜 위험한 거였는데도 저한테 독사랑 같이 사진을 찍어 달라고 하더라고요."

    나는 조용히 웃었다. "진짜요?"

    킨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들 한두명씩 꼭 있어요. 제 친구들은 그런 걸 맨날 본다니까요. 너무 멍청하게 위험을 감수해요. 야생 동물한테 다가간다던가. 수영하면 안 되는 호수에서 수영한다던가. 걸으면 안 되는 길을 걷는다던가."

    갑자기 포피와 함께 인레에 있는 호텔 옆의 호수에 뛰어들었던 게 생각났다. 순간적으로 죄책감에 찔렸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항상 그래요. 얼마나 위험한지 알지도 못하고." 킨이 계속했다. "위험은 숨겨져 있어요. 뭐에 물릴지 모르죠. 들개. 광견들. 독사들. 상처에 알을 낳는 거미들. 물 속에 사는 기생충들. 우리 나란 관광업이 꼭 필요하긴 하지만, 음, 영국에선 어떻게 말하더라? 양날의 칼이라고 할 수 있죠. 장단점이 있어요."

    그는 잠시 멈추더니 담배를 한 번 빨고 내게 건네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땅을 전혀 존중하지 않아요. 오래된 곳들이 있다는 걸 몰라요. 그 사람들이 태어나기 한참 전부터 존재해 왔고, 절대 방해해서는 안 되는 것들."

    *

    집에 갔을 땐 포피의 상태가 더 심해져 있었다. 많이 심했다. 말도 거의 안 하고, 수프를 만들어 줬는데 먹지도 않았다. 포피에게 키스하려 몸을 숙이자 입에서 이상한... 썩은내가 났다. 밖에 너무 오래 꺼내 둔 고기같은 냄새.

    포피에게 들을 수 있었던 거라곤 그녀가 다음 날 오후에 의사를 만나기로 예약을 잡았다는 거였고, 솔직히 당시에는 그것만으로도 많이 안심이 되었다.

    몇 시간 후 나도 자려고 포피가 누운 침대에 올라갔을 땐 포피는 이미 깊이 잠들어 있었다.

    *

    밤중에 무언가 나를 깨웠다.

    어떤 소음. 부스럭대는 소리가 꾸고 있던 꿈과 반쯤 섞여들어왔다. 나는 수영하다 물 밖으로 허우적대며 올라오듯 잠에서 깨어났다. 방은 꽤 어두웠기에 처음엔 뭐였는지 짐작하지도 못했다. 꿈에서 들은 부스럭대는 소리가 계속 들려왔고, 내가 깨어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는 잠시 시간이 걸렸다.

    긁적, 부시럭, 긁적, 부시럭. 부드러운 잔소음이었다. 가까이에서 들려왔다. 학생 때 살았던 오래된 집에 쥐가 있었는데, 그 생각이 제일 먼저 들었다. 벽이나 바닥 아래서 바삐 움직이는 발들의 소리일까? 하지만 틀렸다. 나도 그게 아니었단 걸 알았다. 소리는 부드러웠지만 벽 안에서 들리는 소리는 아니었다. 더 가까이서 들렸다.

    나는 등을 돌렸고, 침대가 끼익 하는 소리를 내었다. 갑자기 소음이 멈추었다.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어둠 속을 주시했지만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그저 침묵 뿐. 그런데 시야 한켠에서 조그만 움직임이 보였다.

    나는 포피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숨이 목구멍에서 꽉 막혔다.

    그녀의 머리가 이상한 모양이었다. 포피의 실루엣을 바라보자마자 그 생각부터 들었다. 그녀가 이상해 보인다는 것. 나는 깊은 어둠 속에서 그녀의 윤곽선만을 볼 수가 있었는데, 그녀의 머리 모양이 울퉁불퉁했다. 그녀의 입이 있어야 하는 곳에서 뼈 한 마디가 더 자라고 있는 것처럼.

    나는 눈을 꼭 감고 잠에 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났다. 포피의 어두운 형태가 침대에서 움직이도니 칭얼대는 소리 같은 게 났다. 부드러우면서도 높은 톤의 콧소리가, 포피 쪽으로부터 들려왔다. 그러더니 포피가 자기 쪽으로 몸을 돌리며 심각한 기침을 시작했다. 식식대며 가쁘게 숨을 들이마시더니 기침을 좀더 해댔다. 갑자기 포피가 자다가 질식을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운 생각이 들었다. 목에 가래랑 그 하얀 털들이 뭉쳐진 덩어리가 걸려 있는 걸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몇 초 후 기침은 잦아들었다.

    나는 잠이 완전히 달아났고 얼어붙은 채 침대에 누워 듣고만 있었다. 그 부드러운 소음을 들으려 귀를 곤두세운 채 말이다.

    하지만 내가 들을 수 있던 소리는 포피의 숨소리 뿐이었다.

    *

    그게 어젯밤이었다.

    마치 몇 년은 된 것처럼 느껴지긴 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24시간도 안 되었다고. 하루도 되지 않아 내 인생이 갈기갈기 찢겨나갔다. 이제 다음 부분은 좀 빨리 써야겠다. 기록은 해 놔야 한다. 하지만 너무 많이 생각하거나 주저하면 정신이 나갈 것 같다.

    오늘 아침에는 평소처럼 출근했다. 이 문장을 쓰는 것 자체로 죄책감에 구역질이 나지만, 사실인 건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병원에 전화를 하거나, 포피를 응급실에 데려가지도 않았다. 분명 그랬어야 하는데. 나는 그저 옷을 챙겨입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문 밖을 나섰다.

    포피의 병원 예약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이나, 어젯밤에 잘 자라고 뽀뽀해줬을 때 이미 푹 잠들어있었다는 사실 때문에 안심했었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둘 중 무엇도 내 기분을 나아지게 하진 않는다. 내 생각엔 나도 이미 무언가 심각하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냥 그 사실을 인정하기 싫었던 거지.

    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직장에서는 시간이 흘러가는데 포피에게서 아무 연락도 없자 불안감은 더 커졌다. 나는 포피가 자고 있는 거라고, 아님 병원에 가 있는 거라고 혼자 생각했지만 도움은 되지 않았다. 다섯 시 정각이 되어 드디어 사무실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뛰어가고 있었다.

    현관문에 다다르자마자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전부터 알고 있었다고 해야겠지. 우리 집이 있는 층에 오자마자 포피의 거친 기침 소리가 복도에 울려퍼졌다. 어젯밤에 들었던 것보다 더 심했다. 훨씬 더. 복도의 메아리 때문에 왜곡되게 들리는 걸지도 모르지만, 거의 인간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나는 문고리에 열쇠를 허겁지겁 집어넣고 현관 안으로 달려들어갔다. 소리가 들리는 곳을 찾아 허둥대다가 욕실에 다다랐다.

    포피가 변기 앞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변기통을 손으로 꽉 잡은 채 말이다. 그녀의 머리카락은 땀에 젖어 검은 커튼처럼 얼굴 주변에 걸려 있었고, 포피는 계속해서 기침하고 또 기침했다. 강한 기침 때문에 온몸이 흔들리고 있었다.

    "자기야, 내가-"

    포피가 내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내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반쯤 돌아보았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잠깐 보자마자 나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포피의 피부가 검붉은 색이었다. 그녀의 목에 핏대가 밧줄처럼 두드러져 있었다. 머리카락들이 이마에 달라붙은 채 그녀의 충혈된 눈 주변을 감싸고 잘 보이지 않게 했다. 나는 그 눈에서 공포를 볼 수 있었다. 공황 상태에 빠르게 다다르고 있는 무언가를. 포피가 입을 벌렸고 나는 겁에 질린 채 그녀의 입가에서 흘러내리는 피를 바라보았다. 낮은 신음이 그녀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는데, 그것은 고통과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고 핸드폰을 꺼내려고 했는데, 갑자기 포피가 쓰러졌다. 손이 변기에서 미끄러져내리면서 그녀는 타일바닥 위에 옆으로 쓰러졌다. 포피의 몸 전체가 발작을 일으키며 떨렸다. 그녀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리고는 입을 벌렸다. 질식하는 듯 그륵거리는 소리가 났다. 나는 핸드폰을 만지작대며 잠금 해제를 하고 있었는데, 그녀의 목구멍 깊은 곳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하얀 형체가 있었다. 그것은 포피의 입 안 시커먼 어둠 속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뭔가가 걸려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뭉툭한 뼈마디 같다고 생각했다. 혹시 그녀의 기도에 음식이 걸린 것일수도 있다고. 그런데 그게 움직였다. 포피가 몸을 떨어서 움직인 게 아니었다. 그녀의 목구멍에 있는 그것은 자기 혼자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꿈틀대며 배배 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손에서 핸드폰이 미끄러져 떨어졌다. 나는 무릎을 꿇고 주저앉아 그녀의 얼굴을 한 손으로 감쌌다. 그녀의 피부는 이미 울그락불그락한 보라색이 되어 있었고, 더 이상 숨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나는 그녀의 목 안으로 손을 넣어 뭐가 있든간에 꺼내려고 했던 것 같다. 숨통을 트이게 해 주려고. 하지만 그녀의 얼굴을 돌려 입안을 보려고 하자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달았다. 그것이 자기 혼자 빠져나오고 있었기 때문에.

    그때 포피의 입 안에서 본 장면을 절대, 평생 잊을 수 없을 거다. 영원히. 지금도 눈을 감으면 생생하게 보인다. 고장나서 버퍼링에 걸린 공포영화 필름처럼 그 악몽같은 장면은 끝없이 내 머릿속에서 재생될 것이다.

    대학 시절, 쥐가 있다는 걸 발견하기 전에 우리는 쓰레기봉투를 밖에다 내놓곤 했다. 뒷문 옆에 있는 쓰레기더미 쪽에. 우리 중 아무도 쓰레기를 버리는 날이 무슨 요일인지 몰랐기 때문에, 가끔은 쓰레기들이 몇 주고 거기 쌓여 있기도 했다. 어느 날은 쓰레기를 새로 버리러 나갔는데 검은 쓰레기더미 속에서 부스럭대는 소리가 들렸던 기억이 난다. 부드럽게 긁적이는 소리. 처음엔 바람인 줄 알았으나, 손에 든 봉투를 내려놓으려는 찰나 오래 놔둔 쓰레기봉투 중 하나에 구멍이 나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검은 봉투 속의 뾰족한 이빨. 그 구멍 속을 들여다보자 통통한 쥐 머리가 모습을 드러내던 기억이 선명하다.

    포피의 입 안을 보면서 떠오른 기억이 그거였다. 뚱뚱한 갈색 쥐가 쓰레기봉투 밖으로 꾸물꾸물 기어나오는 장면. 하지만 내가 욕실에서 본 것은, 포피의 축축하고 어두운 입 안에서 기어나오던 것은, 훨씬, 아주 훨씬 더 심각했다.

    쥐와 비슷한 크기였지만, 공통점은 딱 그거 하나였다. 일단 그것의 털은 하얬다. 핏자국과 소화가 덜 된 음식이 덕지덕지 달라붙은 더러운 흰색. 그것이 포피의 혀 너머로 몸을 꿈틀대며 올라오자 그것에게는 발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다리는 있었는데, 길고 얇은 게 설치류보다는 거미의 다리 같았다. 다리가 여러 개였다. 그것은 포피의 입 안에서 꿈틀대며 기어다녔다. 그 모든 것이 끔찍하긴 했지만 제일 최악은 따로 있었다. 최악이었던 건 그것의 얼굴이었다. 구겨진 듯한, 종양처럼 생긴 갈색 살덩어리에 흰색 털이 가득 덮여 있었다. 세 개의 절대 깜빡이지 않는 노란 눈들이 달린 종양이었다.

    나는 포피에게서 떨어져 뒤로 넘어졌다.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포피의 기도를 뚫는다던가 구급차를 부른다던가 하는 논리적인 생각들이 잠시 동안 전부 사라졌다.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차가운 타일 바닥 위에 앉아 바라만 보는 것이었다.

    그것이 우는 소리를 냈다. 높은 톤의 갸냘픈 소리가 목덜미를 간지럽게 만들었다. 그것의 검은 다리들은 포피의 아랫입술을 잡고 겨우 그녀의 입 안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그것이 바닥으로 떨어지자 나는 손으로 바닥을 짚고 뒤로 물러났다.

    바퀴벌레가 움직이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전혀 빨라 보이지 않지만 엄청나게 빠르다. 이 하얀 생물체는 그런 식으로 움직여 포피의 미동없는 몸 앞에 움크리고 섰다. 그것은 잠시 가만히 있더니 내 앞으로 기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무서워할 새도 없이 그것은 타일 바닥 위로 발을 구르며 나를 지나쳐 욕실을 빠져나갔다.

    침실을 가로질러 잽싸게 커튼을 기어오르는 것을 잠시 볼 수 있었지만, 어느새 그것은 사라져 있었다. 반쯤 열린 창문을 넘어 밤의 어둠 속으로.

    *

    앰뷸런스를 부른 기억은 나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 불렀을 것이다. 긴급 의료원이 내 팔을 잡던 게 기억나니까. 나는 포피 곁에 앉아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을 걸고 있었다. 그들이 들어오는 소리는 듣지 못했다.

    그때 포피는 이미 죽어 있던 것 같다. 움직이지 않은 지 오래였고, 피부도 차가웠으니까.

    그 다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의료원 한 명이 나를 거실로 데려가 소파에 앉히던 것은 기억난다. 나한테 말을 걸면서. 대답을 했던 것은 같은데, 뭐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유일하게 기억나는 건 그들을 따라가지 않겠다고 고집부리던 거다. 나는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나중에 따라가겠다고 했다. 의료원한테 소리를 질렀던 것도 같다.

    그들이 가고 나서 얼마 후, 이 글을 쓰기 조금 전, 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허공만 쳐다보고 있었다. 생각을 했다. 내가 뭘 했어야 했는지, 뭘 하지 않았는지 생각을 했다. 포피의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무언가에 대해 생각을 했다. 킨과 나누었던 대화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엄청 오래 전인 것처럼 느껴졌다. 킨이 세상에 존재하는 오래된 존재들에 대해 이야기해주었을 때가. 건드려서는 안 되는 것들.

    이제 어서 가야 한다.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어 포피에 대해 알려야 한다. 의료원들을 따라가야 한다. 그런데 그렇게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 게 문제다. 마음 한 켠으로는 어서 밖에 나가서 다시는 이 집으로 돌아오고 싶지 않은데, 다른 한 켠으로는, 창밖의 어둠에 대해 계속 생각하게 된다. 그 하얀 생물체가 사라져 버린 그 어둠.

    재빠르게 다리를 놀리는 그 하얀 생물체는 바깥 어딘가에 있을 것이다. 하수구나 벽의 갈라진 틈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이다.

    기다리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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